1. AI와 도서관 큐레이션의 만남
도서관 큐레이션은 단순한 도서 목록 제공이 아니라, 이용자의 관심사·시대 흐름·사회적 이슈를 반영하여 지식과 정보를 선별하고 조직하는 전문적인 행위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도서관 큐레이션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AI는 대출 기록, 검색어, 열람 패턴 등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자료를 자동 추천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자주 대출한 책의 키워드를 분석해 유사한 주제의 도서를 제안하거나, 특정 계절이나 기념일에 맞춘 테마 큐레이션을 자동 생성하는 시스템이 운영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큐레이션은 빠르고 개인화된 추천이라는 효율을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인간 사서의 전문성과 감성적 접근은 점차 축소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정보 접근의 민주화라는 도서관의 본질적 가치가 알고리즘 중심으로 재편될 때, 우리는 다시금 ‘무엇을, 누구를 위한 큐레이션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2. 알고리즘 추천의 한계와 편향
AI 기반 큐레이션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와 ‘정확성’이다. 그러나 이 정확성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반복성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AI는 ‘이미 사람들이 좋아했던 책’을 기준으로 추천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나 비주류 콘텐츠를 외면할 위험이 있다. 예컨대 다수가 읽은 베스트셀러 위주로 큐레이션이 구성되면, 사회적 소수자나 신진 작가의 작품은 추천 리스트에서 배제될 수 있다. 또한, 알고리즘은 인간의 맥락 이해 능력—즉, 어떤 사회적 이슈가 현재 중요하고, 어떤 문맥에서 그 책이 의미를 가지는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AI 추천 큐레이션은 반복적이고 획일화된 정보 소비를 조장할 수 있으며, 결국 도서관의 다양성·포용성·비판적 사고라는 교육적 목적과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AI의 활용은 보조적 수단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사서의 전문성과 가치판단은 여전히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3. 변화하는 사서의 큐레이션 역할
AI 기술이 큐레이션의 일부를 자동화하면서, 사서의 역할은 단순한 도서 선정자에서 정보 해석자, 콘텐츠 기획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자로 확장되고 있다. 사서는 AI가 추천한 도서가 왜 선택되었는지를 분석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편향이나 누락된 시선을 짚어낼 수 있는 감성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시기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젠더 문제나 환경, 이민, 노년층 이슈에 대해 AI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추가하고, 관련 주제의 큐레이션을 구성함으로써 ‘정보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사서는 다양한 관점과 배경을 가진 이용자들이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중재자로서의 책임을 지닌다. 큐레이션이 단순한 데이터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서사와 통찰을 담는 플랫폼이 되도록 설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사서에게 요구된다.
4. 사람과 기술의 공존을 위한 큐레이션 방향
결국 도서관 큐레이션은 기술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빠르고 정밀한 추천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의 손길과 의도가 들어가지 않으면 생명력 없는 리스트에 불과하다. 사서는 AI가 분석하지 못하는 맥락, 정서, 사회적 이슈를 큐레이션에 반영함으로써 정보의 깊이와 폭을 확장한다. 나아가, 사서가 직접 큐레이션 알고리즘의 설계 과정에 참여하거나, 알고리즘이 반영한 데이터의 성격을 설명하고 개선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도서관은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술을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재구성하는 공공적 지식의 장이 될 수 있다. AI의 발전은 사서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람과 기술이 조화롭게 협력할 때, 도서관 큐레이션은 보다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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