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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도서 큐레이션 사례

hpsh2227 2025. 4. 21. 21:17

 

 

감정으로 책을 고르다, 마음을 위한 큐레이션의 시대
책은 언제나 인간의 감정에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기쁠 때는 더 큰 영감을 주고, 슬플 때는 말없이 위로하며, 불안할 때는 차분한 지혜를 건네준다. 최근 전 세계의 도서관과 서점, 문화기관에서는 이 감정에 주목하여 ‘감정 중심 도서 큐레이션’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기존의 장르나 주제, 작가 중심 큐레이션과 달리, 독자의 현재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우울할 때 읽는 책”, “이별 후의 책”, “혼자인 밤에 어울리는 책”, “행복이 막 찾아왔을 때 읽는 책”처럼 이용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맞춤형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책 추천이 아니라, 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과 고립감이 커지면서 도서관은 ‘정서적 안전지대’ 역할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감정 도서 큐레이션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독자는 더 이상 “무슨 책을 읽을까”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책을 원할까”를 묻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서의 역할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하며, 감정을 읽고, 그에 맞는 책을 건네는 ‘공공 감정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감정 도서 큐레이션 사례

 

 

 

세계 각국의 감정 큐레이션 사례, 도서관이 건네는 위로
감정 도서 큐레이션의 대표 사례 중 하나는 영국에서 시작된 ‘북 프리스크립션(Book Prescription)’ 제도다. 이 제도는 심리학자나 상담사, 사서가 협업해 감정 상태별로 적절한 책을 ‘처방’해주는 서비스로, 우울증, 불안, 상실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에 맞춘 추천 리스트가 제공된다. 사용자는 병원에서 받은 감정 처방전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아 읽고, 독서일지를 작성하거나, 독서치료 상담과 연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읽기만 해도 치유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독자가 감정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국의 공공도서관들 또한 유사한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 중이다. 뉴욕 퀸스 도서관은 청소년 대상의 감정별 북 큐레이션 시리즈를 운영하며, ‘분노가 치밀 때’, ‘사랑이 아플 때’, ‘혼란스러울 때’ 등 감정별로 테마 책장을 따로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스웨덴 고텐버그 도서관은 ‘감정 카드’를 활용한 독서 추천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이용자가 카드에 자신의 감정을 표시하면 사서가 즉석에서 해당 감정에 어울리는 책을 소개해주는 방식이다. 이런 감정 기반 큐레이션은 이용자에게 실질적인 정서적 지지로 작용하며, 도서관이 단순한 자료실이 아닌,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도서관의 감정 큐레이션, 작지만 깊은 변화의 물결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감정 도서 큐레이션이 조용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립도서관은 ‘마음 책장’이라는 이름으로 분노, 우울, 외로움, 기쁨, 슬픔 등 10가지 감정 키워드를 기반으로 큐레이션 북리스트를 제작하고, 전시 코너를 따로 마련했다. 이용자들은 특정 감정을 골라 그에 해당하는 책을 찾아 읽고, 짧은 감상이나 느낌을 ‘감정 노트’에 남기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부산시의 한 도서관은 ‘당신의 감정에 맞는 책 한 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QR코드 기반의 감정 설문 후 책을 추천해주는 디지털 큐레이션 키오스크를 설치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충남 아산시립도서관은 지역 심리상담소와 연계해 청소년 대상 ‘감정 도서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사서가 상담심리학 교육을 이수한 뒤 감정 기반 북 큐레이션과 함께 짧은 상담도 병행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감정을 주제로 한 도서 전시회’, ‘감정 에세이 낭독회’, ‘나의 감정 처방전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전국 곳곳의 도서관에서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책 추천이 아닌 정서적 공감과 위로의 통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서의 감정 공감 능력과 책을 통한 정서적 소통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며, 사서들은 ‘감성 큐레이터’로서의 전문성과 역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감정 중심 독서가 바꾸는 도서관의 미래
감정을 중심으로 한 독서 큐레이션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도서관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책은 늘 독자와 감정을 나눠왔지만, 이제는 그 연결 방식이 훨씬 더 섬세하고 의도적으로 다듬어지고 있다. 도서관은 이러한 감정 큐레이션을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정보의 양은 넘쳐나지만, 정서적 연결은 점점 희미해지는 현실 속에서 감정 기반의 큐레이션은 이용자에게 깊은 만족감을 준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기반의 감정 분석을 통해 더 정교한 큐레이션이 가능해질 것이며, ‘감정 + 독서 + 커뮤니티’가 결합된 형태의 도서관 프로그램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감정 큐레이션은 학교 도서관, 작은 도서관, 기업 문고, 심지어는 복지기관과 병원 도서관까지 확장되며, 책을 통한 정서적 치유와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결국 도서관이란 책만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고, 삶을 함께 살아주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감정 도서 큐레이션은 바로 그 변화를 이끄는 첫걸음이자, 도서관이 시대와 감정에 응답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