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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홈리스, 난민,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hpsh2227 2025. 4. 12. 21:27

도서관이 홈리스, 난민,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일까?

도서관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공 공간’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책을 읽고 공부하며 사색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 도서관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문화적 상징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지닌다. 하지만 그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전제는 과연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특히 홈리스(노숙인), 난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도서관은 과연 친숙하고 안전한 공간일까? 이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한 정보 제공 공간이 아닌, 삶의 회복을 위한 출발점이자 심리적·신체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쉼터’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홈리스들은 안정된 주거지와 가족, 직업을 잃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로, 물리적 공간 자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그들은 대개 사회로부터 배제된 채 살아가며, 기본적인 위생 문제나 안전 문제, 그리고 사회적 낙인에 시달리고 있다. 도서관은 이들에게 단순한 휴식처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일부 도시에서는 도서관을 홈리스의 피난처로 활용하면서 복지 상담, 취업 연계 프로그램, 기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난민 역시 언어의 장벽, 문화적 차이, 제도적 허점 등으로 인해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정착 초기,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해 건강, 교육, 법률 등 중요한 사회 구조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이때 도서관이 다국어 자료, 무료 통역 서비스, 문화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의 다리’ 역할을 한다면 정착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장애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시각·청각·지체·발달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은 여전히 도서관 접근성에서 구조적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물리적으로 경사로가 없거나, 화면 낭독 시스템이 미비한 경우, 혹은 사서가 장애 친화적 의사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이들은 ‘이용 불가능한 공간’으로 도서관을 인식하게 된다. 정보 접근성이 곧 인권이라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고려할 때, 도서관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포용 전략을 갖춰야 한다. 단순히 도서관의 문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는 ‘접근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구조적이고 감성적인 ‘배려의 설계’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서관의 역할과 확장 가능성

도서관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개방을 넘어,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포용적 도시 모델’이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경우, 노숙인을 위한 상시 복지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훈련받은 ‘사회복지 전문 사서’가 상주해 심리상담과 취업 연계를 도와준다. 캐나다 밴쿠버의 경우에는 홈리스 이용자를 위한 무료 샤워실과 소지품 보관함을 도서관 내부에 설치하여 도서관을 단순한 책 공간이 아닌 ‘인간적인 공간’으로 확장했다.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Oodi) 도서관’은 디자인 단계부터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였으며, 자동문, 높이 조절 가능한 책상, 점자 지도, 음성 안내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장애 친화 설계를 적용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고 있다. 서울의 은평구립도서관은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독서 활동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의 한 도서관에서는 난민 아동을 위한 다국어 동화 구연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시도는 ‘개별 도서관 차원의 임시적 프로젝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과 예산 확보 없이는 장기적 운영이 어렵다. 특히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 큰글씨 도서, 오디오북 제공은 아직 전국 도서관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더불어 난민과 홈리스를 위한 다국어 자료, 생활정보 자료는 극히 드물고, 이들을 위한 전담 인력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도서관이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 도서관’은 이제 정보 제공 기관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 통합의 거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기관, 비영리단체, 지역 공동체와 협업해 복합 기능을 갖춘 ‘지역 통합형 도서관’으로 발전해야 한다. 도서관 내에 카운슬링 룸, 무료 법률상담, 언어교실, 장애인 체험관 등 다층적인 서비스가 결합될 때, 도서관은 진정한 의미의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구현을 위한 실천 방안

도서관이 실질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요구된다. 첫째,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핵심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는 도서관법과 관련 조례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명문화하고, 이를 위해 별도의 예산 항목과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시설만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내용과 운영의 지속성까지 보장하는 구조여야 한다. 예컨대, 매년 ‘장애인 접근성 평가’와 ‘홈리스 이용 만족도 조사’를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도서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용자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인적 자원의 전문화도 매우 중요하다. 사서들은 이제 단순한 도서 분류와 대출 업무를 넘어, 상담 능력, 사회복지 지식, 장애 이해 교육 등을 갖춘 ‘복합 역량 전문가’로서 역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서관학과 교육과정의 개편과 사서 자격증 요건의 강화가 고려되어야 하며, 현장에서는 정기적인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속적인 학습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 난민, 홈리스 당사자를 도서관 직원으로 채용함으로써 이들의 시선이 직접 서비스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도 포용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셋째, 물리적 공간의 유연한 설계와 기술적 지원도 병행되어야 한다. 휠체어 접근이 용이한 넓은 복도, 점자 블록과 자동문, 음성 안내 시스템, AR 기반 실내 길찾기 기능, 다국어 전자도서관 시스템 등은 도서관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요소다. 홈리스나 난민을 위한 휴게 공간, 긴급 구조 요청 버튼, 생리용품·세면용품 무상 제공 장치 등을 설치하는 것도 구체적인 포용의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인식의 변화이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이 홈리스나 난민, 장애인을 ‘이질적인 존재’가 아닌 ‘같은 이용자’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진정한 포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도서관은 시민 대상 인권 교육, 다양성 캠페인, 약자와 함께하는 독서모임 등을 꾸준히 운영하며 문화적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포용은 구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람 사이의 존중과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