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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도서관 공간 재설계: 거리두기와 개방성의 균형

hpsh2227 2025. 6. 1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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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 이후 도서관 공간, 무엇이 달라졌는가?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서관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그중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역은 ‘공간 구성’이다. 도서관은 이용자가 머무르고, 탐색하며, 서로 소통하는 공유 공간이기 때문에 감염병 확산 시기에는 곧바로 ‘위험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마스크 착용과 발열 체크, 밀집 방지, 좌석 간 거리두기, 이용자 수 제한 등 다양한 방역 조치가 시행되었고, 도서관은 잠시나마 ‘사람이 적게 머물수록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의 본질은 개방과 접근성, 공동체성에 있다. 팬데믹 이후 도서관이 다시금 이용자에게 열린 공간으로 복귀하면서도, 이전보다 더 세심한 위생관리와 물리적 안전 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방역을 넘어 도서관 공간 설계 자체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거리두기’라는 안전 기제가 요구되면서, 과밀한 열람석 배치와 밀집형 열람실 구조는 재설계가 불가피해졌다. 또한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동서 남북 진입구 구분, 환기 시스템 개량, 무인 시스템의 확대 등 새로운 공간 전략이 전면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서관 고유의 개방성과 환대성, 커뮤니티 기능이 약화되는 문제도 동시에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외 도서관들은 ‘물리적 안전’과 ‘사회적 개방성’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균형을 추구하는 공간 혁신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도서관은 이제 더 이상 책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디자인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2. 거리두기를 고려한 공간 재설계 전략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서관 공간 재설계는 기본적으로 **‘안전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거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좌석 간 간격을 넓히는 차원을 넘어, 이용자의 동선, 체류 시간, 활동 유형, 동반 인원 등을 고려한 공간 배치 전략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많은 도서관에서는 독서 테이블을 1인용으로 분리하거나 투명 칸막이를 설치해 비말 차단 효과를 도모했으며, 일부는 아예 ‘도서관 내 독립 공간’으로서 개인 연구실이나 소형 학습 부스를 도입해 거리두기를 자연스럽게 구현했다. 이처럼 사적인 공간을 확장하면서도 공공성을 잃지 않기 위한 디테일 설계가 도서관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도서관 공간의 가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정된 열람석과 책장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동식 가구, 모듈형 테이블, 접이식 벽체, 전천후 사용 가능한 다목적 공간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는 행사와 프로그램, 강연 등이 늘어날수록 거리두기를 위한 공간 확장성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남시 판교도서관은 코로나 시기 이후 북카페 공간을 모듈화하여 필요 시 학습 공간, 회의실, 전시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실외 공간의 활용도 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도서관 마당이나 테라스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거리두기를 위한 야외 열람 테이블을 배치하는 사례가 국내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거리두기라는 제약은 오히려 도서관이 폐쇄적인 내부 구조에서 벗어나 ‘열린 공간’으로 변화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3. 개방성과 접근성을 유지하는 UX적 설계 요소

비록 감염병 예방을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하더라도, 도서관은 이용자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 공간 설계에는 감성적 접근과 UX(User Experience) 기반 요소들이 함께 고려되고 있다. 우선 시각적으로는 개방감 있는 천장 구조, 투명 유리 벽체, 자연광을 도입한 설계 등으로 ‘환기되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청주오창호수도서관은 ‘숲 속 도서관’을 콘셉트로 하여 천장을 높이고 채광창을 설치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아닌 ‘공간적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이용자에게 물리적 편의성과 심리적 안정감을 동시에 주는 요소들, 예를 들어 자동환기 시스템, 공기청정기, 스마트 체온 센서, 무인 대출·반납기 등은 ‘비접촉’이라는 요구를 UX로 연결시킨 장치들이다. 또한, QR 코드 기반의 열람 좌석 예약 시스템, 모바일 앱을 통한 도서 검색 및 사전 예약은 불필요한 대면 접촉을 줄이면서도 이용자가 도서관을 ‘안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도서관의 공공성과 환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필요에 따라 진화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공간의 개방성과 거리두기라는 상충 개념은, 사용자 경험을 기준으로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도서관 서비스로 실현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도서관 공간 재설계: 거리두기와 개방성의 균형

 

4.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서관 공간의 미래 방향

향후 도서관 공간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일회성 대응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공간 전략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코로나19뿐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리스크에도 적응할 수 있는 구조로의 진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공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담는 유기체’로 인식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도서관은 공간 운영의 목표를 단순한 이용자 수 증대에서, 이용자 경험의 질 향상과 안전한 체류시간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이용자 유형별 접근성 역시 중시되어야 한다. 고령자, 장애인, 아동 등 다양한 집단이 불편함 없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을 강화하고, 다문화 사회를 고려한 다국어 안내 시스템과 적정 거리 기반의 배려석 제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서관이 공간의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 간 관계의 ‘조율자’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팬데믹을 경험한 사람들은 ‘안전한 거리’를 원하면서도, ‘외로움 없는 만남’을 갈망한다. 도서관은 이 두 욕망 사이에서 공간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즉, 단순히 가구의 배열이나 열람석 수를 조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과 심리적 안정을 담아낼 수 있는 커뮤니티 기반 공간으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서관은 이제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고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리두기와 개방성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도시 속 문화 거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 그리고 그들이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