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사서는 정보 검열을 해야 할까? 표현의 자유와 윤리 사이

hpsh2227 2025. 4. 10. 21:31

1. 정보 홍수 속 사서의 역할 변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인터넷, SNS,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다. 이처럼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정보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도서관의 중심 인물인 사서의 역할도 기존의 단순한 자료 정리에서 벗어나, 정보를 선별하고 평가하는 전문가로 진화하고 있다.

사서는 더 이상 책을 분류하고 대출을 관리하는 관리자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사서는 이용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큐레이터이자, 정보의 윤리적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중재자 역할까지 맡는다. 특히 공공 도서관은 청소년, 고령자, 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가 함께하는 공간이기에, 제공되는 정보의 폭과 질에 따라 이용자들의 인식과 가치관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책임감 속에서 사서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정보를 해석하고 안내하는 ‘정보의 윤리 관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이 ‘검열’의 문제다. 사서가 특정 정보를 걸러내거나 제한할 경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모든 정보를 그대로 제공하는 것 역시 공공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정보의 개방성과 안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사서에게 요구되는 복잡한 과제가 되고 있다.

 

 

사서는 정보 검열을 해야 할까? 표현의 자유와 윤리 사이

 

2. 표현의 자유와 도서관의 책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시민 개개인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된 기본권이다. 이는 국제 인권 선언과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명시되어 있으며, 도서관 역시 이 가치를 존중해야 할 사회적 책무를 지닌다. 특히 도서관은 모든 시민이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지식 허브’이기 때문에, 특정 정보나 의견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정보가 평등하게 취급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 정치적·종교적 편향, 성적 다양성과 관련된 자료는 때때로 이용자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관련 책자를 도서관에서 전시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서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용자가 자신의 신념과 상반된 정보에 노출될 때 불편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도서관의 교육적 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서는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기준이 특정 이념이나 집단의 이익에 편향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문화에서 실현될 수 있다.

 

3. 윤리적 정보 관리의 필요성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사회 질서를 해칠 위험이 있다면 제한이 필요하다. 혐오 표현, 가짜 뉴스, 음란물, 폭력적 묘사 등은 단지 ‘의견’의 영역을 넘어선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콘텐츠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현시점에서는, 공공기관인 도서관이 이를 여과 없이 제공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사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와,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 책무 사이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자극적인 폭력 콘텐츠나 왜곡된 역사 인식이 담긴 자료가 비치되어 있다면, 이는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사서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의 발달 단계와 이해 능력을 고려한 안내가 필요하다. 이런 접근은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정보를 책임 있게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이용자가 정보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메타정보를 제공하거나,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정보 자체를 차단하기보다는 이용자의 정보 해독 능력을 향상시키는 전략이며,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와 윤리적 정보 사용의 균형을 실현하는 실천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사서의 전문성은 단지 자료 분류법에 있지 않으며, 정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조율하는 데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

 

4. 균형 잡힌 사서의 자세

사서는 정보 검열자가 아닌 ‘균형을 조율하는 관리자’다. 사서의 역할은 단순한 규제나 차단이 아니라,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서 중재하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창의성과 다양성이 위축되고, 반대로 무분별하게 허용하면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사서는 개인적 가치관에 좌우되지 않는 전문적 태도와 윤리 기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서 교육과정에서 정보 윤리, 미디어 리터러시, 다문화 감수성과 같은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며, 실제 업무에서도 이론적 원칙이 아닌 실제 사례에 기반한 판단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도서관 차원에서도 명확한 자료 수집 정책과 공정한 검토 절차를 마련해, 이용자와의 소통을 통해 정보 제공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용자가 정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투명하고 공정한 가이드라인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도서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결국, 사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윤리적 조정자’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보 사회에서 사서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게 해주는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서관을 통해 접하는 정보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사서의 판단과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사서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공공 지식 전문가 중 하나이며, 그들의 전문성과 책임의식은 표현의 자유와 윤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