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라진 세상, 사서는 사라질까?
디지털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점점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자책, 오디오북, 웹툰, 스트리밍 강의 등이 보편화되면서 도서관 역시 기존의 종이책 중심에서 디지털 자료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어느 날 '책'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도서관의 상징적 존재인 ‘사서’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단순히 책을 분류하고 대출을 관리하는 전통적인 사서의 역할은 사라지는 걸까?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사서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짚어보게 한다. 디지털 시대의 사서는 이제 더 이상 책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설계하고 사용자와 연결하는’ 정보 디자이너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정보 큐레이터로서의 사서
책이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해도 정보는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는 방대한 양의 정보가 존재하지만, 그중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정확한 자료를 선별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바로 ‘정보 큐레이터’로서의 사서이다. 사서는 다양한 출처에서 자료를 수집·분석·정제하여 이용자에게 맞춤형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에 관심 있는 연구자나 학생이 원하는 수준과 깊이의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키워드 기반 정보 큐레이션을 제공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와 학술자료를 가공하여 인포그래픽 형태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기존의 ‘책을 권하는 사서’에서 ‘정보를 길잡이해주는 사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며,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한 역할로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자로서의 사서
사서는 이제 도서관 콘텐츠를 소비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도서관 플랫폼 구축, 디지털 아카이브 운영, 온라인 전시관 구성 등의 업무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역문화나 역사자료를 디지털화하여 누구나 접근 가능한 포털 형태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는 사서의 새로운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또한 도서관 내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 디지털 독서 프로그램, 가상현실을 활용한 문학 체험 콘텐츠 등은 모두 사서가 중심이 되어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이용자 중심의 콘텐츠 구성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서는 콘텐츠 기획자이자 UX 디자이너, 교육 설계자의 역할까지 겸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서라는 직업의 경계와 영역을 확장시키고, 도서관이 정보 이용의 중심에서 디지털 창작과 체험의 중심으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용자 교육자와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사서
디지털 시대의 사서는 다양한 정보 기술에 능통해야 하며, 동시에 이용자들이 이러한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특히 고령층, 취약계층, 외국인 등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집단을 대상으로 스마트 기기 사용법, 전자자료 검색법, 공공데이터 활용법 등을 교육하는 일은 사서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더 나아가, 이용자의 데이터 이용 행태를 분석하여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역량도 요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이나 자료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많이 열람되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서관 서비스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등의 작업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는 정책 수립이나 예산 편성에도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므로, 사서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전략적 사고의 기반이 된다. 이처럼 사서는 디지털 시대의 정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다방면의 능력을 겸비한 전문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도서관의 중심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사서
책이 사라져도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는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되고 융합되며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서는 단순한 관리자나 조력자가 아니라, 도서관을 디지털 공간으로 설계하고 그 안에서 이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플랫폼 운영자’로서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된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기반 도서관, 인공지능 큐레이션 시스템, 디지털 도서관 플랫폼 구축 등은 모두 사서의 창의성과 기획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래의 도서관은 물리적 공간에 머물지 않고 가상 공간으로까지 확장될 것이며, 그 중심에서 사서는 정보와 사람, 기술을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혁신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책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사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선도자로서, 디지털 정보 사회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구현해 나갈 존재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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