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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감정노동, 돌봄과 소진 사이에서 균형 찾기

hpsh2227 2025. 8. 1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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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노동 직업으로서의 사서
사서라는 직업은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도서관은 모든 연령대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이 찾아오는 공간이며, 사서는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맞이하고 소통한다. 어린이와 청소년, 직장인, 은퇴한 노인, 그리고 다양한 요구를 가진 시민들과의 만남 속에서 사서는 ‘정보 제공자’이자 동시에 ‘상담자’, ‘안내자’, ‘경청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서가 보여주는 표정, 어조, 태도는 시민의 도서관 경험을 좌우하게 된다. 즉, 사서의 일은 철저히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 포함된 직무이며, 이는 감정의 진정성뿐 아니라 ‘공적인 친절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동반한다. 고객 서비스 업종에 속하는 다른 직군과 달리, 도서관은 공공성과 평등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서의 감정노동은 더 깊은 차원에서 요구되기도 한다. 시민이 원하는 자료가 당장 없을 때, 혹은 도서관 규정상 해결할 수 없는 민원 앞에서조차 사서는 공손하고 배려심 깊은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이는 일상적으로 정서적 피로를 누적시키는 요인이 된다.

 

 

2. 사서의 돌봄 역할과 그 가치
감정노동 속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돌봄(care)’이라는 가치다. 도서관은 단순한 정보 제공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문화적 쉼터이며, 사서는 이 공간을 지탱하는 핵심 인력이다. 사서가 시민의 사소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하거나,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위해 맞춤형 자료를 찾아주는 순간, 도서관은 단순한 지식 창고가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로 탈바꿈한다. 또한 사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게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는 단순한 업무를 넘어 ‘사회적 돌봄’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학계에서도 사서를 ‘정보 전문가이자 케어 워커(care worker)’로 재정의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고도의 돌봄 기능이 요구될수록 사서 개인이 느끼는 정서적 소진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돌봄의 가치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3. 감정노동이 초래하는 소진과 위험
사서의 감정노동은 때로 심각한 ‘소진(burnout)’으로 이어진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료 대출 기한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 소음 문제나 좌석 이용 문제에서 비롯되는 민원, 혹은 무례한 언행을 보이는 일부 이용자와의 마찰은 사서에게 큰 심리적 부담을 준다. 특히 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은 민원 응대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과 실제 현실의 괴리 속에서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장기간의 감정노동은 우울감, 무력감,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며, 극단적으로는 직무 이탈이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 사서 직군이 ‘높은 직무 스트레스 직종’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감정노동이 단순히 개인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과 직무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서의 감정노동, 돌봄과 소진 사이에서 균형 찾기

 

4. 균형을 위한 개인적 전략
그렇다면 사서 개인은 어떻게 감정노동과 소진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첫째, 자기 돌봄(self-care)의 습관이 중요하다. 감정노동을 수행한 뒤 충분히 휴식하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서나 글쓰기, 동료와의 소모임, 혹은 가벼운 운동은 정서적 피로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둘째, 전문적 역량을 높이는 학습도 중요한 전략이다. 정보 서비스, 심리 상담 기법,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을 학습함으로써 이용자와의 갈등 상황에서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이는 곧 감정 소모를 줄이는 길이 된다. 셋째, 감정을 표현하는 건강한 방식이 필요하다. 때로는 동료와 경험을 공유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혼자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팀 단위에서 상호 지지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5.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조직 차원과 정책 차원의 지원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도서관 조직은 사서들이 감정노동을 겪을 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상담 프로그램, 정기적인 멘탈 헬스 지원, 혹은 업무량 조정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사서가 무리하게 민원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팀 단위의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법적·행정적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정부와 지자체는 사서의 감정노동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서비스 정신’으로 치부하지 말고, 공공기관 노동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조합이나 전문 단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이들이 사서의 목소리를 대변해 정책과 제도에 반영되도록 하는 과정은 감정노동 문제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6. 지속 가능한 돌봄과 균형의 모색
궁극적으로 사서의 감정노동은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직업의 본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문제는 이 노동이 사서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전문성과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서가 돌봄과 서비스의 가치를 실현할 때, 도서관은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 돌봄이 사서 개인의 소진으로 이어진다면, 도서관의 지속 가능성 또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감정노동을 ‘부담’에서 ‘전문성의 한 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복탄력성, 조직의 제도적 장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사서가 감정노동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지 않고, 함께 나누며 지지받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도서관은 진정한 공공성과 돌봄의 공간으로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