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관과 종이 소비: 책임 있는 자원 순환의 출발점
공공도서관은 정보 접근의 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적 기관이자, 대중의 문화·학습 생활을 지지하는 공간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능은 필연적으로 다량의 인쇄물과 종이 기반 매체의 사용을 수반하며, 그로 인한 환경 부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수많은 공문서, 안내자료, 프로그램 홍보물, 내부 행정서류는 물론이고, 오래되어 더 이상 활용되지 않는 폐기 도서 역시 연간 수천 권에 이른다. 이에 따라 도서관은 단순한 정보제공 기관을 넘어서 자원 순환의 실천자이자, 환경 감수성을 갖춘 공간으로서의 책임이 요구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도서관의 종이 재활용 시스템이다.
도서관의 종이 재활용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운영된다. 첫째는 도서관 소장자료 중 이용이 끝난 도서, 훼손 도서, 중복 보유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선별하고 폐기하거나 재활용하는 ‘폐기 도서 처리 시스템’, 둘째는 도서관 내 모든 종이 및 인쇄물의 분리배출을 체계화한 ‘재활용품 분리배출 시스템’, 셋째는 종이 자체를 아예 친환경 대체재로 사용하는 ‘리사이클 페이퍼 및 저탄소 인쇄물 활용’이다. 이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실천 전략을 중심으로 도서관이 어떻게 자원 순환과 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2. 폐기 도서, 쓰레기 아닌 자원이 되다: 선별과 순환 시스템
폐기 도서는 단순히 낡거나 찢어진 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복 보유로 공간을 차지하는 도서, 시대성과 수요가 지나 수집 가치가 낮아진 도서, 새로운 판이 출간되며 활용성이 떨어진 자료 등도 그 대상이 된다. 과거에는 이들 폐기 도서를 일괄 폐기하거나 보관 창고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의 순환 활용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우선 많은 도서관에서는 폐기 직전 도서를 지역 주민에게 나눔 행사(예: 책나눔 벼룩시장, 무료 분양전)를 통해 배포하거나, 지역 사회복지기관, 교정시설, 병원, 해외 도서관 등에 기증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외에도 도서관 내부에서 ‘업사이클링 아트’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이용자들과 함께 폐기 도서를 재료로 북아트, 수첩 만들기, 책갈피 제작 등의 활동을 진행함으로써, 책의 수명을 연장하고 자원 재순환에 대한 교육적 기능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활용이 어려운 도서는 결국 폐기해야 하며, 이때는 제지업체와 협업해 도서를 산업용 재생지 원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일부 도서관은 폐기 도서에 RFID 라벨이 부착된 경우 이를 따로 분리해 회수하는 절차를 마련해, 전자부품이 종이류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폐기 도서는 도서관의 환경경영 전략 속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3. 분리배출의 정교화: 이용자와 함께 만드는 깨끗한 순환
도서관 이용자들이 자주 마주하는 인쇄물로는 책 대출 영수증, 프린트 출력물, 안내 전단지, 독서 프로그램 포스터 등이 있다. 여기에 사서들이 내부에서 사용하는 회의 자료, 공문 인쇄물, 업무일지 등까지 합치면 도서관 내 종이 사용량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종이들이 적절히 분리되지 않고 일반 쓰레기와 혼합된다면 재활용이 불가능해지며, 오히려 환경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에 따라 도서관은 분리배출 시스템의 정교화를 통해 종이류의 순환 효율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실천 사례로는 ‘5단계 분리수거 스테이션’ 도입을 들 수 있다. 일반 종이, 코팅지, 파쇄 문서, 사용 불가능한 폐지, RFID 부착물 등으로 세분화한 수거함을 마련해 이용자와 직원 모두가 정확하게 폐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더불어 종이 분리배출 교육자료를 제작하거나, 도서관 공간 내 사인물을 통해 배출 기준을 시각화하여 자연스럽게 환경 습관을 학습하도록 유도한다. 일부 도서관은 파쇄 문서 보안 시스템과 연계된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여 정보보호와 환경보호를 동시에 실현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행사 후 남은 인쇄물이나 유효기간이 지난 전단지는 곧바로 폐기하기보다 뒷면을 메모지로 재활용하거나, 내부 업무용 초안지로 활용하는 절약형 운영도 널리 퍼지고 있다. 분리배출의 정교화는 단순한 청소 차원이 아니라, 도서관이 환경 친화적 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구현하는 일상적 실천의 중심에 있다.
4. 리사이클 페이퍼와 탄소절감 인쇄물: 인쇄에도 지속가능성을 입히다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단순히 읽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어떤 종이를, 어떤 방식으로 인쇄하느냐는 도서관의 친환경 운영 철학과 직결된다. 이에 따라 많은 도서관에서는 종이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선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사이클 페이퍼(Recycled Paper)’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는 이미 한 차례 사용된 종이를 정제한 재생지로, 신규 목재 펄프 사용을 줄이고 산림 자원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재생율 100%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 일반 백지 대비 약 60~7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인쇄 방식에서도 친환경 잉크(콩기름 잉크 등)와 저탄소 출력 시스템을 도입하는 도서관이 늘고 있으며, 출력물 자체를 최소화하는 디지털 전환 전략도 함께 병행되고 있다. 도서관 안내문, 행사 포스터, 독서교육 리플렛 등은 QR코드와 연동된 디지털 콘텐츠로 대체되기도 하며, 스마트폰 앱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종이 없는 소통이 가능해지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도 종이 양식을 폐지하고 온라인 설문도구나 전자문서 양식을 활용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도서관은 지역 내 ‘친환경 인쇄문화’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사서들이 주도적으로 리사이클 페이퍼 사용을 제안하고, 이용자들에게도 환경 인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인쇄물 제작 자체가 하나의 교육 콘텐츠로 기능하는 것이다. 종이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도서관은 지속 가능한 순환의 고리를 끊김 없이 이어가고 있다.
5. 지속 가능한 도서관을 위한 제언: 실천에서 문화로
도서관의 종이 재활용 시스템은 단지 운영상의 선택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조직 문화의 표현이다. 종이 자원의 생산, 사용, 폐기라는 일련의 순환 과정 속에서 도서관은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종이 자원 흐름에 대한 정기적 진단과 평가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은 종이를 사용하고 있고, 그 중 얼마나 재활용되고 있는지, 재생용지 사용 비율은 얼마인지 등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둘째, 이용자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종이 분리배출 캠페인, 재생용지 체험 워크숍, 폐기 도서 아트 전시회 등 이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통해 자원 순환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셋째, 제도적 측면에서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친환경 운영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리사이클링 기반 시설 확충, 친환경 납품 기준 마련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내부 문서화 방식과 운영 방식 자체가 디지털 전환 중심으로 구조 개편되어야 한다.
종이 재활용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도서관이 시민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작은 실천이 모여 조직의 철학이 되고, 철학이 모여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종이 한 장의 가벼움 뒤에, 도서관의 무거운 책임과 지속가능한 내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색도서관 주간 운영 사례 및 프로그램 소개: 환경영화 상영, 기후 토론회, 제로웨이스트 북클럽 (1) | 2025.07.03 |
---|---|
도서관의 ‘녹색 장서’ 선별 기준 제안: 환경, 기후, 생태 관련 도서의 큐레이션 전략 (1) | 2025.07.02 |
도서관의 ‘녹색 장서’ 선별 기준 제안: 환경, 기후, 생태 관련 도서의 큐레이션 전략 (2) | 2025.07.01 |
디지털 전환과 종이 절감: 도서관 행정의 변화공문서 전자화, QR코드 활용, 앱 기반 알림 서비스 (0) | 2025.06.30 |
도서관에서의 일회용품 줄이기 실험과 이용자 반응: 텀블러 장려, 종이컵 퇴출, 포스터 무지출 캠페인 (1) | 2025.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