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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기록관’으로서의 도서관, 로컬 아카이브 구축법

hpsh2227 2025. 5. 1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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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은 ‘기록의 집’이 될 수 있을까

도서관은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중심으로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서관은 더 이상 책만을 다루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기억과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기록의 집’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 환경, 소멸 위기의 농촌 마을, 문화 다양성이 점점 더 부각되는 다문화 지역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마을 기록관으로서의 도서관’이다. 이는 기존의 도서관이 가진 정보 접근성, 공공성, 지역 밀착성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생활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로컬 아카이브(Local Archive)’ 기능을 함께 수행하자는 움직임이다. 도서관이 마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주민들과 함께 기억을 구성하며, 그것을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저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이 된다면, 도서관은 단지 지식 전달 기관을 넘어 ‘공동체 기억의 중심축’으로 거듭날 수 있다.

 

‘마을 기록관’으로서의 도서관, 로컬 아카이브 구축법

 

 

2. 로컬 아카이브 구축의 의미와 필요성

로컬 아카이빙은 단순한 자료 수집이나 기록 저장을 넘어선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일’이며, ‘사라져가는 삶의 조각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도시 재개발, 고령화,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많은 지역이 급격히 변모하는 현실 속에서,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주민의 목소리, 생활 방식 등을 온전히 남기는 일은 공동체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 전통 공동체 해체, 세대 단절 현상 등으로 인해 지역 주민 간 기억 공유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가운데, 도서관이 마을 기록관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이러한 단절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로컬 아카이브는 주민의 구술, 오래된 사진, 손글씨 편지, 마을 지도, 지역 상점의 전단지, 학교 졸업앨범, 지역 신문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며, 이를 통해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다양성이 드러난다. 이처럼 도서관이 로컬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운영하게 되면, 도서관은 단지 지식의 축적지에서 나아가 지역의 자긍심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문화적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3. 마을 기록관 구축의 실천 방법: 수집에서 전시까지

마을 기록관 기능을 수행하는 도서관이 되기 위해서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기록 수집 단계에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 채록, 사진 기증 캠페인, 생활자료 모집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확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문가 중심이 아닌 주민 중심의 참여 모델이다. 주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하거나 인터뷰에 응함으로써, 단순한 기록 제공자가 아닌 콘텐츠의 공동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기록 분류 및 보존 단계에서는 수집된 자료를 주제별·시기별·형태별로 정리하고, 메타데이터를 부여하여 검색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필요 시 디지털화 작업도 병행하여 물리적 손상을 방지하고 온라인 열람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기록 공유 및 전시 단계에서는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 참여형 전시회, 구술기록 낭독회, 마을신문 발간, 웹 아카이브 구축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이때 도서관은 단지 자료를 열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록이 살아 움직이는 체험 공간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작은 강연장, 워크숍실, 디지털 열람 공간 등이 함께 배치될 수 있다. 이처럼 수집부터 활용까지를 하나의 순환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마을 기록관 구축의 핵심이다.

 

 

 

4. 주민 참여 기반의 운영 모델 정립

로컬 아카이브가 도서관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민 참여와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을 기록 자원봉사단 또는 아카이빙 서포터즈와 같은 주민 참여 조직이다. 이들은 도서관과 협력하여 기록 수집, 정리, 기획 전시에 참여하며, 지역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시민성을 결합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로는 사서의 역할 변화다.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대출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지역 기록을 수집하고 큐레이션하며, 주민과 협업하는 문화기획자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서 대상의 지역 아카이빙 교육과 실습, 외부 전문가와의 협력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로는 지속 가능한 예산과 행정지원이다. 로컬 아카이브는 단기 프로젝트로 끝나서는 안 되며, 장기적인 계획과 안정적인 재정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지방정부의 문화예산, 민간 기부, 공공기관 협력사업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예산 다각화를 시도할 수 있다. 특히 교육청, 문화재단, 시립 박물관 등과의 협력은 콘텐츠의 질과 프로그램 연계 측면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결국 로컬 아카이브는 ‘도서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구축해 나가는 집단적 문화 실천이다.

 

 

 

 

5. 기억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 도서관 아카이브의 확장성

마을 기록관 기능을 내포한 도서관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사회 구성원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나아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창조적 기반이 된다. 예컨대, 수집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 로컬 다큐멘터리 제작, 마을 이야기 지도 제작, 팟캐스트 채널 운영, 구술 기록 낭독회,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쓰는 마을 연대기 등은 도서관이 기록을 통해 어떻게 지역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 사례들이다. 또한 로컬 아카이브는 단일 마을을 넘어 인접한 지역 간의 연계, 타 지역과의 비교 분석, 나아가 국가 단위의 생활문화 아카이브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도서관은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즉, 기록은 그 자체로 권력이자 문화이며, 도서관은 이를 가장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누구나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공공 장치다. 책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기억을 모으고 나누는 이 도서관의 새로운 실험은 앞으로 지역사회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더욱 절실한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