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서 전문성의 새로운 도구, 포트폴리오
현대 도서관은 더 이상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대출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사서 역시 정적인 정보 관리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의 문화와 교육, 정보 흐름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동적인 전문 인력으로 그 위상이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역할의 확장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개별 사서들이 자신의 전문성과 성장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졌다. 바로 ‘전문성 포트폴리오’다. 이는 단순히 이력서나 경력기술서의 연장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꾸준히 기록하고 반추하며, 그 결과를 다양한 형태로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다. 실제로 도서관 현장에서 기획한 프로그램, 작성한 자료, 이용자 피드백, 협업 사례 등은 모두 중요한 전문성의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흩어져 있거나 사서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전문성이 아닌 잊혀지는 경험으로 사라질 뿐이다. 포트폴리오는 이러한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사서 스스로가 성장의 맥락을 자각하게 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2. 기록은 전문성의 씨앗이다
전문성 포트폴리오 구축의 핵심은 ‘기록’이다. 많은 사서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수많은 인사이트와 시행착오를 경험하지만, 그것을 일정한 형식에 따라 남기는 일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록은 단순한 메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예컨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떤 목적과 배경에서 기획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료를 참고했으며, 실제 운영 중에 어떤 예상 밖의 상황이 있었는지를 세부적으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다음 기획의 품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반복적으로 운영되는 계절 프로그램이나 특정 주제 기반의 독서 행사 같은 경우, 전년도 자료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면 새롭게 전개할 때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기록은 조직 내 지식 공유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다. 한 사서의 시행착오와 성과가 문서화되어 공유된다면, 그것은 도서관 전체의 학습 자원이 된다. 따라서 사진, 운영안, 홍보물, 후기, 예산 정산표 등 가능한 모든 산출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저장하는 습관은 사서로서의 전문성을 축적해 나가는 데 핵심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3. 리플렉션은 깊이 있는 성장을 만든다
기록이 양적 축적이라면 ‘리플렉션(Reflection)’은 질적 성찰이다. 아무리 많은 활동을 했더라도 그것에 대한 진지한 되돌아봄이 없다면, 그 활동은 반복될 뿐 개선되기 어렵다. 사서로서 내가 맡았던 한 프로그램이 기대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 때, 나는 단순히 ‘운이 나빴다’는 식의 외부 요인으로 책임을 돌리기보다, 참가자 수요와 시간 배정, 콘텐츠 전달 방식 등 다각적인 요소를 되짚어보는 리플렉션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프로그램 구성의 맥락에서 지나치게 이론적 자료에 치우쳐 아이들의 흥미를 간과했다는 점을 인식했고, 이후에는 항상 대상 연령층의 언어와 감성을 중심에 두고 기획하게 되었다. 리플렉션은 실패뿐 아니라 성공 사례에도 필요하다. 잘된 프로그램은 왜 성공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 구조를 다음 프로젝트에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과정을 워드 파일에 리포트 형식으로 정리하거나, 짧게라도 회고 메모를 남기는 습관을 들였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과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데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서의 기획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학습 도구이다.
4. 성과는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전문성 포트폴리오의 마지막 축은 ‘성과 공유’다. 아무리 훌륭한 기록과 반성이 존재해도 그것이 타인과의 연결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성장의 선순환은 일어나기 어렵다. 성과 공유는 사서 개개인이 지닌 경험과 노하우를 조직 내외부로 확장시키는 창구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내부 회의나 보고서 형태로 정기적인 공유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분기별로 ‘우수 프로그램 사례 발표회’를 열거나, ‘작은 실패 사례 공유회’를 통해 서로의 시행착오를 학습 자산으로 삼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도서관계 학술지나 뉴스레터, 학회 발표 등 외부 채널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널리 알리는 것도 적극 권장할 만하다. 이러한 활동은 단지 외부의 인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활동을 외부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금 그것의 구조와 맥락을 재정립하게 되며, 이는 곧 사고력과 표현력을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나아가 다른 사서와의 교류와 피드백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동기부여를 얻게 된다. 사서라는 직업이 비록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직종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공유되고 확산되어야 할 수많은 지식과 가치가 존재한다. 포트폴리오는 바로 이 가치를 사회와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5. 사서의 내공은 포트폴리오로 증명된다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은 결코 예술가나 디자이너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와 도전이 일상인 현대 도서관 환경에서, 사서야말로 자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문서화하고 체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도 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관련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소감을 기록하며, 다음에 활용할 포인트를 요약한 리포트를 만든다. 이렇게 쌓인 자료는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여주는 나만의 전문성 지도이자, 다음 도약을 위한 출발선이 되어준다. 후배 사서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기록하고, 되돌아보고, 나눠라. 그 세 가지가 사서의 내공을 만든다”고. 도서관은 책의 집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힘은 결국 사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문성에서 비롯된다. 포트폴리오는 그 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며, 우리 모두의 역량을 증명하고 발전시키는 지렛대다. 이제는 사서가 단지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증명할 시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기록하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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