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보 전문직으로서의 사서, 왜 젠더 감수성이 필요한가
사서는 단순히 도서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대출을 담당하는 직무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 접근의 중개자로서, 문화와 지식의 전달자이자 시민과 사회를 연결하는 공공성의 중심에서 사서는 끊임없이 타인과 마주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소수자, 청소년, 고령자,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용자가 혼재하는 공간인 만큼, 사서가 젠더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대응 능력과 공감력을 갖추는 일은 더 이상 부가적인 역량이 아닌 필수적 직무 요건이다. 젠더 감수성이란 단순히 성별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 고정관념, 성별 권력 구조, 젠더 다양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서가 이러한 감수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의도치 않게 성소수자 이용자의 존재를 지우거나,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정보 큐레이션을 하거나, 특정 젠더를 배제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사서가 훈련된 감수성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용자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정보 제공과 공간 운영에 있어 ‘비가시적인 배제’를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다면, 도서관은 진정한 포용성과 평등을 실현하는 공공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2. 기존 사서 교육과정의 한계: 젠더 감수성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 국내외 대부분의 사서 교육과정은 문헌정보학, 정보검색 이론, 데이터베이스 구축, 분류 및 목록 작성, 도서관 경영 등의 기술 중심 커리큘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사서의 전문성과 기능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용자 중심 서비스, 사회적 역할, 포용성이라는 공공 도서관의 운영 철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로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젠더 감수성과 같은 사회문화적 교육 요소는 커리큘럼 내에서 주변화되거나, 선택 과목 또는 일회성 특강 수준으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사서들은 실제 현장에서 성소수자 이용자의 정보 요청, 성인지적 프로그램 기획, 젠더 폭력 민원 응대 등 복잡하고 민감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거나 중립성을 이유로 회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기존 사서 양성 체계에서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가 무비판적으로 재생산되며, 아동 도서 분류나 독서 프로그램에서도 전통적 성 역할 구분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서 교육 과정 전반에 젠더, 다양성, 평등에 대한 기본 교육을 의무화하고, 사례 기반 실천 중심의 훈련 모델을 구축하는 개편이 필요하다. 교육은 사서의 지식 축적을 넘어, 이용자에 대한 감수성과 태도 전환을 이끌어내는 변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3. 실천 중심 젠더 감수성 훈련의 필요성과 방향
젠더 감수성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닌 경험과 실천을 통한 감각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사서 연수나 현직 교육에서는 단순한 이론 강의보다는 역할극, 사례 분석, 체험 기반 학습, 토론 중심 워크숍 등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사서 스스로 자신의 언어와 태도를 점검하고, 무의식 속 차별 구조를 인식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 내 성소수자 이용자 응대 시 발생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놓고 모의상황을 연출하거나, 기존 장서 목록을 젠더 관점에서 재분석해 편향성을 진단하고 대안을 설계해보는 실습 프로그램은 실질적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성인지 관점에서 도서관 공간을 재설계해보는 프로젝트, 여성주의 도서 큐레이션 실습, 포용적 언어 사용법 훈련, 성폭력 상황 대응 시뮬레이션 등도 중요한 훈련 주제가 된다. 이와 함께 사서들 간의 감정 공유와 연대도 감수성 교육의 중요한 축이다. 젠더와 관련된 업무 중재 경험, 이용자와의 갈등 사례, 조직 내 성차별 문제 등을 서로 나누고 토론함으로써 개인적 경험이 조직적 학습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젠더 감수성 훈련은 사서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며, 도서관의 문화를 바꾸는 첫걸음이 된다.
4. 포용적 도서관 실현을 위한 제도적 기반과 미래 과제
젠더 감수성은 한 번의 훈련이나 개인의 선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학습과 제도적 정착을 통해 도서관 문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서 양성 기관과 현장 도서관, 지자체, 문화정책 기관이 함께 연계하여 젠더 감수성 교육을 정규화하고, 운영 지침과 평가 체계에 포함시키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도서관 운영지침에 성인지적 자료 선정 원칙, 성중립 화장실 설계 권고, 포용적 언어 사용 매뉴얼, 젠더 관련 민원 응대 가이드라인을 포함하는 등 구체적 실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젠더 관점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평가에 반영하거나, 도서관 평가 항목에 ‘다양성과 포용성’ 기준을 포함시킴으로써 조직 전반에 감수성 문화가 내재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서 스스로가 젠더 감수성을 ‘부담’이 아닌 ‘전문성의 일부’로 인식하는 문화 조성이다. 사서라는 직업은 단지 정보를 다루는 기술직이 아니라, 정보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연결하는 공공직이다. 그 정체성 안에는 젠더를 포함한 모든 인간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연적으로 포함된다. 결국 젠더 감수성 훈련은 사서를 더 따뜻하게, 더 똑똑하게, 더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도구이며, 그렇게 변화한 사서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진정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민주적 지식의 집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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