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젠더 감수성, 도서관에도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다
오늘날 공공기관의 운영과 공간 설계 전반에서 ‘젠더 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기준이 되고 있다. 젠더 감수성은 성별을 생물학적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젠더 정체성과 경험을 존중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도서관은 공공 문화 공간이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보 플랫폼으로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해야 하며, 이는 단순히 물리적 접근성이나 정보의 양적 제공을 넘어서, 이용자 개개인의 존재 방식과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배려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도서관 운영을 들여다보면 젠더 감수성의 개념이 여전히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화장실의 이분법적 구분, 여성 이용자의 안전 문제, 성소수자를 배제한 자료 분류 체계, 젠더 불균형적인 장서 구성 등은 도서관이 중립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을 깨뜨린다. 특히 다양한 연령, 젠더,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일수록 이러한 감수성의 결여는 쉽게 소외감과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도서관이 진정으로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공간 운영과 서비스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2. 도서관 공간, 젠더 관점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도서관의 공간 설계는 종종 ‘기능적 효율성’이나 ‘미적 통일성’을 기준으로 기획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가 젠더 감수성 없이 진행될 경우, 오히려 특정 이용자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화장실이다. 많은 도서관은 남녀 이분법에 기초한 화장실만을 설치하고, 성소수자나 젠더 비순응 이용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이나 개인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밤늦게까지 운영되는 열람실이나 외진 서가에서 여성 이용자가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 역시 구조 설계 단계에서 배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명과 CCTV, 개방된 시야 확보, 도움 요청 버튼, 긴급 출입 동선 등의 요소는 젠더 폭력 예방을 위한 기본적 고려 사항임에도 일부 도서관은 이를 ‘불필요한 비용’으로 간주한다. 공간 설계 외에도 가구 배치와 시설물 디자인 역시 다양한 신체 조건과 젠더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모차나 생리용품 교체가 가능한 공간은 여성뿐 아니라 보호자, 양육자,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에게 유용한 요소다. 이러한 공간적 재해석은 단지 ‘젠더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이다. 결국 도서관이 공간 차원에서 젠더 감수성을 반영할 때, 비로소 그 안에서의 정보 이용과 커뮤니티 활동도 진정한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3. 젠더 감수성 기반 서비스와 자료의 재구성
도서관은 공간만이 아니라 서비스와 콘텐츠의 측면에서도 젠더 감수성을 요구받는다. 사서의 안내 방식, 자료 분류 체계, 장서 개발 원칙, 프로그램 기획 등 모든 운영 요소가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를 성찰하며 재조정되어야 한다. 먼저 장서 구성에서 기존의 편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정 성 역할을 고정화하는 아동 도서, 남성 중심의 역사 해석, 이성애 중심의 가족 이야기,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내용 등이 그대로 비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LGBTQ+ 관련 도서가 아예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그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는 분류 체계를 사용하는 도서관도 여전히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서 큐레이션 과정에서 젠더 전문가의 자문을 받거나, 다양한 정체성과 관점을 담은 자료를 적극 수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비스 측면에서도 성 중립적 언어 사용, 성인지적 안내 문구, 사서의 젠더 교육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프로그램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여성주의 독서모임, 성평등 글쓰기 교실, 성소수자 문학 작가 초청 강연, 돌봄 노동자 대상 정보 워크숍 등은 도서관이 젠더 이슈를 단지 ‘자료의 일부’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 전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은 도서관이 단순히 중립적 공간이라는 명목을 넘어, 구체적 약자 배려와 사회 정의 실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적 기반에서 출발해야 한다.
4.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도서관 운영의 확장성
젠더 감수성은 단지 특정 계층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이용자에게 안전하고 존중받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기준이어야 한다. 특히 도서관은 지역 사회 내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연결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젠더 관점의 실천은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를 위해서는 젠더 감수성을 조직 문화 차원에서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서관 내부에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정기화하고, 채용 과정과 평가 기준에서 젠더 다양성 존중 항목을 반영하며, 내부 토론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에서도 성별 권력 구조와 의사 표현 방식에 대한 균형을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 내 젠더 활동 단체, 여성가족센터, 인권 교육기관 등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하거나, 도서관이 ‘젠더 이슈 대응 지역 허브’로 기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결국 젠더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도서관 운영은 단지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 포용성이라는 도서관 고유의 가치를 실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이용자가 누구든, 어떤 정체성과 경험을 가졌든,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정보와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진정한 공공 도서관이 되기 위해, 이제 도서관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정직하게 질문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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