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관은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도서관은 정보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열람할 수 있도록 돕는 지식 중심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정보 접근의 물리적 한계가 줄어들면서 도서관의 공간 개념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단순한 ‘지식 열람의 장소’를 넘어, 사람들이 모이고, 배움이 일어나며, 나아가 새로운 창작과 실천이 일어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이 바로 ‘레지던시 프로그램(Residency Program)’이다. 원래 예술 분야에서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특정 장소에 머물며 창작과 교류 활동을 하는 형태로 운영되던 이 프로그램은, 최근 도서관에서도 도입되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서관은 다양한 정보를 축적한 지적 자원 공간이자 공공성이 보장된 플랫폼이기에, 창작자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창작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시민들은 예술가와의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해 창작 과정을 이해하고, 문화 생산에 참여하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결국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지식이 예술로, 기록이 표현으로 전환되는 실험적 무대로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2. 도서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구성과 운영 방식
도서관에서 운영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대개 일정 기간 동안 예술가, 작가, 디자이너, 연구자 등을 초청하여 도서관 내에서 창작 활동을 수행하게 하고, 그 결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초기에는 소규모 도서관에서 지역 작가와 함께 운영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도시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서 외부 지원을 받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공공성과 창작의 융합’이다. 참여 작가는 단순히 개인 작업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서관 장서나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하거나, 도서관 이용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며, 도서관 내에서 워크숍이나 강연, 전시, 퍼포먼스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적극 소통한다. 예컨대 어떤 작가는 도서관 내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시를 쓰고, 이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낭독회로 엮어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전개할 수 있다. 또 다른 작가는 지역 아동과 함께 그림책을 공동 제작하거나, 고령층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의 기억을 시각 예술로 구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 레지던시는 창작과 커뮤니티, 기록과 상상이 만나는 문화적 협업의 실험장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3. 공간 활용의 확장: 조용한 열람실에서 살아 있는 창작 현장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의 공간 활용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도서관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조용함’과 ‘정적 환경’ 중심의 공간 운영 방식은 창작과 실험, 만남과 대화가 활발히 일어나는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술가가 도서관 내에 머물며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레지던시 스튜디오’는 단순한 작업 공간을 넘어, 도서관 장서와 이용자,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다. 또한 전시를 위한 갤러리형 벽면, 공동 창작을 위한 워크숍 룸, 소규모 공연을 위한 다목적홀, 시민과의 대화를 위한 토론 공간 등이 유기적으로 배치되면 도서관은 창작과 공유의 복합 무대가 된다. 이와 함께 도서관 내 사서와 레지던시 작가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운영 체계도 필수적이다. 사서는 프로그램 기획과 이용자 연결, 장서 정보 제공, 교육 콘텐츠 조율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작가는 도서관의 자료를 창작적 영감으로 전환하고, 사서와 함께 지역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공동기획자로서 활동한다. 이렇게 공간과 사람, 콘텐츠가 맞물릴 때, 도서관은 단순한 정보 공간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문화적 창의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4. 레지던시 도입의 가치와 도서관 문화 전략의 방향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단지 예술가 한 명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도서관이라는 공공기관이 지역사회와 문화적 관계를 맺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도서관은 정보 이용자 중심의 수동적 공간에서,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창조하는 능동적 문화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에게도 창작의 맥락을 확장시켜주고, 지역주민에게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고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성과 창의성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레지던시 도입은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가치 창출 전략이 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자체, 문화재단 등과의 협업을 통해 지역 기반의 도서관 창작 거점을 만들고, 각 도서관의 특성과 자원을 반영한 맞춤형 레지던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더불어 결과물을 지역 축제나 문화행사, 학교 교육과 연계함으로써 지속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사서는 이 모든 흐름의 촉진자로서 기획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예술 이해력을 갖춘 새로운 역할로 재정의되어야 하며, 도서관은 시민과 예술이 만나는 가장 가까운 ‘창작의 집’으로서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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