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책 없이도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hpsh2227 2025. 5.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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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의 정의는 책인가, 사람인가

오랫동안 도서관은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과 함께 성장해 왔다. 서가에 가득 찬 책, 조용한 열람실, 종이 냄새는 도서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도서관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과연 도서관이란 책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구조적 변화에 대한 논의가 아닌, 도서관이라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정체성과 존재 이유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다. 사실 도서관의 핵심은 지식 그 자체와, 그 지식을 나누고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 즉 사서와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에 있다. 정보의 형태는 종이책에서 전자책, 데이터베이스, 오디오 콘텐츠, 영상 자료 등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도서관 역시 그 변화에 맞춰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책은 도서관의 중심이 아닌 수단이며, 본질은 여전히 ‘지식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변함없다.

 

 

 

2. 도서관은 정보 접근권의 상징이다

도서관이 책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공공성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가 곧 권력이고 기회이며, 그것의 이용 가능 여부가 개인의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정보는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경제적 여건, 교육 수준, 기술 접근 능력 등 여러 요소로 인해 정보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단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공공의 지식 플랫폼이자 안전망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책 대신 인터넷, 데이터, 영상, 오디오 콘텐츠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제공하고, 검색을 도와주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안내하는 기능은 여전히 사서와 도서관의 몫이다. 특히 고령층, 장애인, 청소년, 저소득층 등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 도서관은 단순한 정보 이용 공간이 아니라 정보 주권을 회복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삶의 거점이다. 책의 유무를 떠나, 정보의 평등한 이용이라는 가치가 도서관의 존재 이유임은 분명하다.

 

 

 

3.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 만남과 배움의 공간성

책이 없는 도서관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종종 "그럼 무엇을 하러 가야 하나?"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도서관은 이미 책을 넘어 다양한 활동과 경험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해왔다. 아이들의 그림책 읽기 모임, 중장년층의 디지털 기기 배우기 교실, 작가 초청 강연, 지역사회의 작은 콘서트, 학생들의 진로 탐색 프로그램까지, 도서관은 물리적 책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배우고, 나누고, 성장할 수 있는 ‘지식 커뮤니티 허브’로서 기능하고 있다. 책 없이도 도서관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공 공간’으로서의 가치에 있다. 독서란 활동도 본질적으로는 혼자 하는 학습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사유와 대화로 이어질 때 깊이를 갖게 되며, 도서관은 그 교류가 가능한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팬데믹 이후 집단적 고립과 단절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도서관의 공간적 기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책 대출을 넘어서, 공동체의 회복과 공공성의 재구성이라는 시대적 사명과도 연결된다.

 

 

 

4. 기술과 도서관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서의 역할

책 없이 운영되는 도서관이 현실이 되면서, 사서의 역할도 함께 재편되고 있다. 과거 사서의 주된 업무가 장서 정리와 대출·반납 처리였다면, 지금은 디지털 콘텐츠 큐레이션, 정보 리터러시 교육, 맞춤형 정보 상담, 가상 공간 내 서비스 운영 등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떤 정보가 신뢰할 만하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안내해주는 ‘정보 중개자’로서의 사서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전자책 플랫폼 관리, 데이터 분석 기반 추천 시스템 운영, 온라인 콘텐츠 제작 등도 현대 사서의 주요 역량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도서관이 책의 양이 아니라, 서비스를 통해 얼마만큼의 의미 있는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평가받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도서관은 매체의 변화 속에서도 사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용자와 지식을 연결하는 역할을 이어가고 있으며, 책이 없어도 도서관은 사람에 의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 변화는 도서관의 기술 도입과 공간 구조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치며, 미래 도서관의 청사진을 그리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5. 도서관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책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지식과 정보의 집’이라는 본질에 있다. 책은 그 집에 놓인 수단 중 하나였고, 이제는 다양한 디지털 자료, 사람들 간의 교류, 문화예술 콘텐츠, 체험형 교육 등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사람과 정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동체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고, 물리적 자료가 점점 줄어들더라도, 도서관은 여전히 사회 속 지식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기관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서관을 책으로만 정의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이 지닌 공공성과 가능성, 그리고 사서라는 안내자를 중심으로 한 인적 자원의 가치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책 없이도 도서관은 존재할 수 있고, 오히려 더 확장된 방식으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모두를 위한 지식 공간’이라는 도서관의 변함없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책 없이도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