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시대, 정보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21세기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은 인류의 정보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검색엔진, 추천시스템, 자동 분류 알고리즘이 선별해준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보이지 않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정보가 먼저 노출되고, 어떤 데이터가 뒤로 밀려나는가는 기술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AI는 인간이 설계한 기준에 따라 작동하며, 그 기준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정보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과거 도서관은 모든 이용자에게 동등한 접근 기회를 제공하며 지식의 평등을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접근의 형평성보다 ‘노출의 불균형’이 새로운 불평등으로 등장한다. 검색결과 상위에 어떤 책이 배치되는가, 추천 시스템이 어떤 주제의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가에 따라 이용자의 세계관이 점점 편향될 수 있다. 즉, 정보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기반인 ‘비판적 사고’ 역시 위축된다. 이런 맥락에서 도서관은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니라 AI가 만들어내는 정보 불평등을 완화하는 민주주의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2. 도서관의 공공성, 알고리즘의 편향을 감시하는 새로운 역할
AI의 알고리즘은 데이터 속 패턴을 학습하지만, 그 데이터가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다면 결과 또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여성 작가나 소수자 집단의 자료가 덜 인용되거나, 특정 지역·언어의 콘텐츠가 비가시화되는 문제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어 왔다. 도서관은 이러한 구조적 편향을 감시하고 교정할 수 있는 독립적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갖는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성의 재정의’라는 철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AI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도서관의 공공성은 ‘공유와 접근의 보장’에서 ‘투명성과 감시의 실천’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도서관은 이용자에게 어떤 정보가, 어떤 기준으로 추천되고 분류되는지를 설명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도입하여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또한 사서들은 기술의 단순한 관리자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윤리와 알고리즘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는 **‘디지털 시민성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도서관의 공공성은 더 이상 물리적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알고리즘 속에 내재된 사회적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에게 그 구조를 해석해 주는 지식 민주주의의 중추로 진화해야 한다.

3. 사서의 역할 재구성: 기술과 인간의 경계에서
AI 기술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사서의 일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더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과거 사서가 물리적 자료를 분류하고 대출을 관리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정보의 신뢰성과 맥락을 판단하는 ‘정보 해석자’의 역할을 맡는다. 예를 들어, 챗봇이 생성한 콘텐츠가 도서관 이용자에게 제공될 때, 그것이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인공지능이 학습한 편향된 데이터의 산물인지 점검하는 것은 인간 사서의 몫이다.
사서는 또한 데이터 거버넌스의 중심에서 기술과 인권, 효율성과 윤리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떤 기준으로 폐기할 것인가, 개인의 검색 기록은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등은 더 이상 IT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서의 판단은 ‘지식의 접근권’과 ‘프라이버시 권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이다. 특히 공공도서관은 이용자 데이터를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드문 ‘신뢰의 장치’로 기능한다. 즉, AI 시대의 사서는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설계하는 윤리적 중재자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4. AI 시대의 도서관 민주주의: 다시 ‘공공성’을 묻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고 지식을 자동으로 요약·제시하는 시대, 도서관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고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시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적 자율성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자유뿐 아니라 ‘정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관의 미래는 ‘기술의 도입 여부’보다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AI를 활용한 도서관 서비스는 효율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공공성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선호를 강화할수록 사회적 다양성은 약화된다. 따라서 도서관은 AI를 단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이용자의 참여와 피드백을 반영한 ‘참여형 알고리즘’, 다양한 시각을 보장하는 ‘다층적 데이터 큐레이션’, 그리고 알고리즘의 작동을 공개하는 ‘투명성 보고서’ 등은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이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도서관 민주주의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깊은 공공성과 연대를 실천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사서와 도서관은 이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시민이 스스로 사고하고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다시금 자각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선택하는 세상 속에서, 도서관은 여전히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내는 공간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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