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국주의 확장과 도서관의 정치적 기능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제국주의 시대는 단순히 영토의 확장만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통제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를 수반했다.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를 단순한 자원 공급지나 군사적 거점으로만 보지 않았고, 지식을 장악하는 것을 식민지 지배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식민지 주민의 지적 활동을 관리·제한하는 권력 장치로 기능했다.
도서관은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명(civilizing mission)’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관으로 활용되었다. 열강은 도서관 설립을 통해 서구적 지식을 전파하고, 식민지 사회에 서양 중심의 가치관을 주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명분과 달리, 도서관은 식민지 주민이 자율적으로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제국의 권위와 질서를 재생산하는 수단이었다. 이는 도서관이 본질적으로 ‘지식의 민주화’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식 접근을 통제하고 차별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했음을 잘 보여준다.
2. 식민지 도서관의 이중적 성격: 개방과 배제
식민지에서 세워진 도서관은 대체로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띠었다. 하나는 식민지 행정관과 서구 거주민을 위한 지배층 전용 도서관, 다른 하나는 식민지 주민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운영된 공공 도서관이었다.
전자의 경우, 식민지 행정에 필요한 법률, 행정, 경제 관련 문헌이 집중적으로 수집되었고, 이는 철저히 유럽 언어로 기록된 자료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현지인들에게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지식 체계였다. 후자의 경우, 식민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부 교육적 기능을 수행했지만, 이 역시 철저히 검열된 자료와 서적만 제공되었다. 특히 식민지 주민들이 민족주의적 사상을 고취하거나, 자주적 역사 해석을 할 수 있는 자료는 배제되었으며, 서구의 가치와 질서를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구조는 도서관을 ‘지식의 집’이라기보다 ‘지식의 경계선’으로 만들었다. 누구는 들어올 수 있고, 누구는 배제되는가. 어떤 지식은 공유될 수 있고, 어떤 지식은 철저히 금지되는가. 식민지 도서관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히 제국주의적 답을 제공하며, 지식의 위계와 차별을 제도적으로 구현했다.
3.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식민지 도서관 경험
제국주의 시대 도서관의 권력적 성격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인도의 경우, 영국은 도서관 제도를 도입하며 이를 ‘근대화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19세기 후반 인도 전역에 설치된 공공도서관은 교육적 기회를 확장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통치 이념을 강화하고, 현지 지식 전통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인도 고유의 산스크리트 문헌이나 구전 지식은 소외되었고, 대신 영국 출판물과 영어 중심의 지식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 도시 중심에 서구식 도서관을 건립해 서구 문화를 ‘근대성의 표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농촌이나 토착 사회에는 지식 접근의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으며, 도서관은 현지인과 식민지 엘리트만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기관에 머물렀다. 이는 도서관이 ‘모두를 위한 지식의 집’이라는 이상과 달리, 제국주의적 위계와 배제 구조를 반영한 결과였다.
4. 한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도서관 통제
한반도 역시 제국주의 시대 도서관의 지식 통제 구조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도서관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운영 목적은 조선인의 교육권 보장이 아니라 식민 통치의 정당화와 지식 통제에 있었다. 총독부 도서관은 일본어 서적과 제국주의 선전 자료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한국어 자료나 조선인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자료는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검열되었다.
당시 조선인이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고, 열람 가능한 자료에도 제약이 많았다. 반면 일본인 거주민은 자유롭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도서관이 단순히 지식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식의 독점과 차별을 제도화한 권력 장치였음을 잘 보여준다.
5. 식민지 도서관의 유산과 오늘날의 성찰
제국주의 시대 도서관은 지식 접근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보다는, 제국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고 식민지 주민을 지적·문화적으로 종속시키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제한적 경험 속에서도 식민지 지식인들은 도서관을 통해 민족적 각성과 저항의 기회를 찾기도 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도서관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던 서적을 토대로 민족 운동을 전개하거나,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오늘날 우리는 도서관을 ‘열린 지식의 집’으로 인식하지만, 그 역사적 뿌리에는 제국주의적 차별과 통제의 경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현대 도서관이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불평등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포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지식을 소유하고, 누가 지식을 배제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지표이다. 제국주의 시대 도서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도서관이 단지 지식의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가 교차하는 장(場)이었음을 깨닫게 하며, 오늘날 도서관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공성과 민주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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