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서 자격의 제도적 기반이 된 문헌정보학 교육의 역사와 구조
대한민국의 사서 양성과정은 법적·제도적으로 문헌정보학 교육을 기반으로 운영되어 왔다. 『도서관법』과 『자격기본법』에 따라 정식 사서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문헌정보학 전공 학위를 이수하거나 사서교과과정을 수료해야 하며, 국가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제도도 이 교육체계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문헌정보학은 전통적으로 정보의 분류, 조직화, 검색, 관리 등의 기술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었으며,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자료를 체계화하고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기술적 전문성을 핵심으로 해왔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전국의 주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가 설치되었으며, 다양한 사서직 인력을 양성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회적 정보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변하고, 도서관의 역할도 복합문화공간·정보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기존 문헌정보학 교육이 현재와 미래의 사서 직무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여전히 많은 대학과 교육기관은 수십 년 전 정립된 교육과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론 중심·서지학 중심의 교육이 현장 실무와 괴리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2. 현행 문헌정보학 교육의 한계: 변화하는 현장과의 불일치
현재 문헌정보학 교육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도서관 현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은 여전히 도서분류법, 목록작성법, 참고봉사론 등 전통적 이론 중심의 교과목이 주류를 이루며, 정보기술이나 이용자 중심 서비스, 디지털 콘텐츠 기획, 프로그램 운영, 커뮤니티 기반 정보활동 등 현장에서 중시되는 역량은 상대적으로 교육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데이터 큐레이션, 메타데이터 설계, 디지털 정보 윤리, 플랫폼 기반 정보기획 등 신유형의 정보 직무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실무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또한 대부분의 교육은 강의실 내 이론 전달에 집중되며, 실제 도서관 실습이나 현장 체험, 프로젝트 기반 교육이 부족한 구조다. 교수진 구성에서도 사서 직무 경험이 풍부한 현장 실무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으며, 교육과정 개편 주기도 느려 산업·현장 변화 반영이 미흡하다. 이러한 상황은 예비 사서들의 실무 적응력 저하와 현장 불만족으로 이어지며, 문헌정보학 전공에 대한 매력도와 진입 동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격증은 땄지만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비판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사서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 약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3. 개편이 필요한 핵심 영역: 실무성, 융합성, 공공성 강화
이제 문헌정보학 교육은 단순한 이론 학문에서 벗어나, 현장성과 융합성을 갖춘 실용학문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실무 중심 커리큘럼 개편이 가장 시급하다. 도서관 운영 실무, 이용자 응대 기술, 프로그램 기획, 홍보 마케팅, 민원관리, 디지털 장서 운영, 사서 감정노동 대응 등 실제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역량을 반영한 과목이 정규 커리큘럼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융합 교육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문헌정보학은 이제 교육학, 사회복지학,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 디자인,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어야 하며, 특히 데이터 리터러시, 인공지능, 플랫폼 기반 서비스 기획 등 정보기술과의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는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화하는 교육이다. 사서는 단지 정보기술자나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닌, 정보 정의와 접근권을 지키는 시민 실천가이자 공공성 기반의 전문직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 다양성, 젠더 감수성, 정보 인권, 디지털 윤리 등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사서의 철학과 윤리 의식을 함양하는 인문사회 기반 과목도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졸업 후 진로 설계와 경력 개발을 위한 실습, 포트폴리오 작성, 현직자 멘토링 프로그램 등의 교육 후속 지원 체계 역시 문헌정보학과 개편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4. 미래형 사서 양성을 위한 전략과 제도적 재설계 과제
문헌정보학 교육의 개편은 개별 교육기관의 변화만으로는 어렵다.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연계가 함께 이뤄져야 하며, 특히 사서 양성기관과 현장 도서관의 협력 구조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또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한국도서관협회(KLA) 등 관련 기관이 공동으로 ‘사서 교육 표준역량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각 대학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구조가 요구된다. 동시에 지역별 도서관과 연계한 정기 실습 기회 확대, 졸업생 대상 취업 연계 네트워크, 역량 기반 인증제도 등도 함께 설계되어야 하며, 현직 사서의 재교육과 자격 갱신 제도도 검토 대상이 된다. 또한 온라인 학습과 비대면 콘텐츠 기반 교육도 강화되어야 하며, AI와 데이터 중심 시대에 맞춘 플랫폼형 교육과 지속적인 학습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문헌정보학 교육은 ‘문헌’에 국한된 전통에서 벗어나, ‘정보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이 전환을 통해 사서라는 직업도 시대에 맞는 신뢰와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는 단지 기술을 아는 사서보다,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통합형 사서를 필요로 하며, 문헌정보학은 이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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