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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고대 사서들의 꿈

hpsh2227 2025. 9. 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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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고대 사서들의 꿈

 

 

1. 인류 최초의 지식 집합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탄생

고대 세계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상징이었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운 이 도서관은 지중해 세계의 모든 지식을 한곳에 모으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당시 왕들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배의 문서와 두루마리를 압수해 도서관에 복사본을 남기고 원본을 돌려보내는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 수집을 넘어 세계의 지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도서관에는 수십만 권의 두루마리가 보관되었으며, 철학, 과학, 의학, 문학 등 당대의 모든 학문이 모였다. 그러나 이 방대한 지식의 집적을 가능하게 한 숨은 주역은 다름 아닌 사서들이었다. 고대의 사서들은 단순히 문서를 보관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언어와 학문을 이해하고 분류 체계를 구축하는 전문 지식인이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들은 고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히브리어, 이집트어, 페르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다루며, 이들을 통해 문헌을 번역하고 학문을 교류시켰다. 이는 현대 도서관의 ‘정보 접근성 보장’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알렉산드리아 사서들의 분류학과 학문적 기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사서 중 한 명은 칼리마코스였다. 그는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시인이자 학자였으며, 인류 최초의 도서목록이라 불리는 《피나케스(Pinakes)》를 작성했다. 이 목록은 저자별, 주제별로 분류된 방대한 참고 문헌으로, 도서관 이용자들이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고대형 OPAC(온라인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서 분류법, 예컨대 듀이 십진분류법의 원형을 알렉산드리아 사서들이 실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단순히 자료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문 연구에도 직접 참여했다. 호메로스 서사시를 교정하고 주석을 단 것도 알렉산드리아 사서들의 작업이었다. 이처럼 고대 사서들은 ‘관리자’이자 동시에 ‘연구자’였다. 오늘날 사서들이 데이터 분석과 큐레이션, 나아가 연구 지원까지 담당하는 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들은 지식의 단순 보존자가 아니라, 지식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존재였다.

 

 

3. 불타 사라진 도서관,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사서의 정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가장 큰 비극은 그 파괴와 소실이다. 로마의 내전과 후대의 전란 속에서 도서관은 여러 차례 불타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수십만 권의 두루마리가 소실되면서, 인류가 가졌을지도 모르는 지식의 보고가 영원히 사라졌다. 그러나 도서관의 불길 속에서도 지식을 지키려는 사서들의 노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기록은 다른 도시로 옮겨지고, 몇몇 문헌은 사서들의 손에 의해 복사되어 전해졌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상징성은 단순히 세계 최대의 장서를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의 소실 앞에서도 기록을 지키려는 사서들의 의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전쟁, 검열, 자연재해 속에서도 기록을 보호하려는 사서들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에도 서버가 파괴되거나 데이터가 유실될 위험은 늘 존재한다. 따라서 사서의 사명은 여전히 ‘지식의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라짐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사서들에게 ‘왜 기록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4. 오늘날 사서가 배우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현대 도서관과 사서의 철학 속에 살아 있다. 지식을 한곳에 모으고, 이를 분류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하며, 시대를 넘어 보존하는 일은 여전히 사서의 핵심 임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사서들이 보여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사서가 단순한 기록 관리자가 아니라 지식 창조자라는 점이다. 오늘날 사서들은 데이터 과학, AI 추천, 메타데이터 설계 등 새로운 도구를 다루지만, 본질은 알렉산드리아 시대와 다르지 않다. 즉, 지식을 분류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비극은 ‘지식의 보존’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클라우드와 서버만이 아니라 윤리적, 제도적 장치까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사서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관리하는 직업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미래로 잇는 다리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일했던 사서들의 꿈은 오늘날에도 도서관과 사서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