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사서의 일은 줄지 않는다: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

hpsh2227 2025. 9. 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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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 발전 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사서의 역할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의 도입은 우리 사회의 정보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검색 엔진은 몇 초 만에 수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전자책 서비스는 도서관을 가지 않아도 손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심지어 챗봇과 AI 비서는 복잡한 질문에도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며 마치 ‘디지털 사서’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흐름만 본다면 사서의 역할은 줄어들고, 도서관 업무도 자동화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사서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기는커녕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용자가 원하는 ‘정확한 지식’을 선별하고 맥락화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기술은 방대한 자료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자료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맥락상 적합한지, 이용자의 상황에 맞는지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사서의 몫이다. 더 나아가 도서관은 단순히 자료를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문화적·교육적 허브로 변모하고 있다. 따라서 사서는 정보 전문가이자, 문화 기획자이자, 이용자와 사회를 연결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기술은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이용자의 삶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전문적 판단은 결국 사서가 담당한다. 이처럼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서의 일은 오히려 ‘질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2.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적 요구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료를 찾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진로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오고, 또 어떤 이는 외로움을 해소할 공간을 찾는다. 특히 청소년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할 때가 많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검색 결과가 아니라, 학습 방법과 자기 주도적 탐구 태도를 알려주는 조언이다. 또, 노인들은 기술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 기본적인 정보 검색조차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서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안내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해 주며, 때로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는 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이 절대 해줄 수 없는 인간적 상호작용이다.

이주민이나 다문화 가정의 경우, 도서관은 언어와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이들에게 사서는 단순히 자료 제공자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된다.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추천해 주면서 동시에 부모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은 매우 인간적인 상황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된다. 데이터는 이용자의 ‘패턴’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맥락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사서는 “이 사람이 왜 이 자료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삶의 이야기에 동참한다. 이러한 인간적 요구는 기술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며, 따라서 사서의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사서의 일은 줄지 않는다: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

 

3. 기술로는 재현할 수 없는 감수성과 윤리성

정보는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 어떤 맥락에서, 누구에게 전달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성소수자 청소년이 관련 자료를 찾으려 할 때, AI는 단순히 키워드에 맞는 책을 나열할 것이다. 그러나 사서는 그 과정에서 이용자의 심리적 안전, 사회적 편견, 가족이나 또래 관계의 맥락까지 고려해 적절한 자료를 추천하고 안내한다. 이는 감수성과 윤리적 판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공감’의 능력과 ‘배려’의 태도는 코드로 재현할 수 없다.

또한 도서관은 언제나 윤리적 갈등에 직면한다. 저작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정보 편향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등은 모두 사서의 전문성과 책임 의식을 요구하는 문제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중립성을 넘어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난민 관련 정보를 제공할 때 단순한 통계보다는 그들의 권익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자료를 우선시해야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단순한 ‘검색 정확도’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오직 사서의 윤리적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기술은 도구로서 사서의 업무를 보완할 수 있을 뿐, 인간적 판단과 윤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4. 미래에도 확장되는 사서의 전문성

앞으로 도서관은 더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제공하는 교실이자, 지역 주민이 모여 토론하는 광장이며, 세대와 계층이 교류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친환경적인 공간 운영과 ESG 활동의 거점으로서 도서관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서는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 사람을 이해하는 감수성, 그리고 사회를 이해하는 시야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특히 AI와 빅데이터 시대에는 사서가 데이터 분석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이용자 데이터를 읽고, 그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며, 더 나은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은 미래 사서의 중요한 역량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데이터를 사람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감수성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미래의 사서는 정보의 중개자를 넘어 ‘지식과 사람을 연결하는 디자이너’가 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서의 업무는 단순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즉, 사서의 일은 결코 줄어들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변화 속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