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도 대체 못하는 사서의 감수성과 판단력
1. 디지털 전환 속에서도 빛나는 사서의 감수성
오늘날 도서관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무인 대출반납 시스템, 자동화 서가 정리 로봇, AI 추천 큐레이션 등 기술이 도입되면서 사서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사서의 감수성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역량으로 남아 있다. 감수성이란 단순히 감정이 풍부하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의 맥락을 읽고 이용자의 보이지 않는 필요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예컨대, 낯설고 긴장한 아이가 도서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 사서는 눈빛과 몸짓을 통해 그 아이가 어떤 책에 관심을 가질지를 파악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AI도 아직 완벽하게 따라할 수 없는 인간적 직관의 영역이다. 감수성은 기술이 제공하지 못하는 섬세함과 공감의 힘으로, 도서관 이용자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2. 판단력은 단순한 정보 선택을 넘어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높은 정확도의 추천 알고리즘을 제공하지만, 모든 정보가 적절한 것은 아니다. 특히 도서관은 지식과 가치가 교차하는 공공 영역으로서, 정보의 적절성과 윤리성을 판단하는 사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판단력이란 단순히 ‘맞는 정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신적 위기 상황에 처한 청소년이 자해 관련 도서를 찾을 때, 사서는 그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을 파악하고 정서적 안정을 도울 수 있는 자원이나 기관을 연결하는 등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린다. AI는 이런 복잡한 윤리적 고려를 할 수 없다. 사서의 판단력은 정보 제공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적 책임, 맥락적 지혜를 반영한다. 이는 단지 도서를 ‘찾아주는 일’이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공공 공간을 신뢰와 안전의 장소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3. 감수성과 판단력이 통합되는 사서의 실천
감수성과 판단력은 사서의 업무 곳곳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 추천이나 열람 서비스가 아니라, 이용자 상담, 독서 프로그램 기획, 지역사회 연계 활동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이 두 가지 역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사서는 지역의 언어·문화적 배경, 참여자 구성,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의 방향을 설계한다. 이는 데이터만으로는 도출할 수 없는 감성적 통찰과 상황판단의 결과다. 또한, 책 선정에 있어서도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 사서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감수성과 판단력이 통합된 사서의 실천은 결국, 기술이 할 수 없는 인간 중심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사서가 단순한 정보 관리자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화적 브로커로 기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4. 기술 협업 시대, 사서의 전문성은 더욱 강화된다
AI 기술과의 협업이 확산되는 지금, 오히려 사서의 감수성과 판단력은 더욱 부각된다. 기계가 제시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용자에게 진정 필요한 방식으로 변형하거나 조정하는 역량은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AI가 추천한 도서가 내용상 너무 어렵거나 민감한 주제를 포함할 경우, 사서는 그 내용을 분석하고 이용자의 수준이나 상황에 맞게 수정된 추천을 제공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도서관 환경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는 판단도 중요하다. 사서는 기술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도서관의 철학과 목적에 맞게 ‘사람을 위한 기술’을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서는 기술과 감성, 판단을 융합하는 전문가로서, 기술 의존 사회 속에서 더욱 빛나는 존재로 자리 잡을 것이다. 사서의 전문성은 데이터 분석 능력뿐 아니라, 인간 이해와 사회적 감수성에 기반한 복합적 역량으로 확장되고 있다.
5. 사서의 감수성과 판단력을 키우는 방법
이러한 감수성과 판단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길러질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도서관에서는 사서의 공감 능력 향상과 윤리적 판단력 강화를 위한 워크숍, 사례 기반 교육, 심리학·인문학 연계 연수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의 다양한 경험 역시 중요한 학습의 장이 된다. 다양한 이용자와의 만남,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의 대처, 협업과 소통을 통해 사서는 자신의 감수성과 판단력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사서 개인 역시 독서와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 중심의 직무는 더욱 중요해지며, 사서는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감수성과 판단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서가 도서관과 사회 안에서 살아 숨 쉬게 하는 ‘사람의 힘’이며, 그것이 바로 AI로는 대체할 수 없는 진정한 전문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