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서가 되는 길: 기획력과 감수성은 어떻게 기르나?
1. 문화사서란 누구인가: 도서관의 감성 기획자
도서관은 단지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제 도서관은 지역의 문화 허브이자, 시민이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열린 무대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문화사서다. 문화사서는 작가 초청 강연, 독서 프로그램, 전시기획, 시민참여 프로젝트, 어린이 체험활동, 책 축제 등 도서관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이용자와의 접점을 가장 많이 만들며, 도서관의 분위기와 성격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문화사서는 단순히 ‘행사 진행자’가 아닌 문화의 흐름을 읽고 기획하는 사람, 삶의 감수성을 콘텐츠로 전환하는 기획자다. 이 역할에는 두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하나는 '기획력', 다른 하나는 '감수성'이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감수성이 기반이 되어야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고, 그 위에 기획력이 더해져야 그것을 프로그램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문화사서가 되기 위한 길은 바로 이 두 능력을 동시에 다듬는 여정이다.
2. 기획력은 훈련이다: 콘텐츠를 설계하는 힘
기획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능력이다. 문화사서에게 필요한 기획력은 단순한 아이디어 제안이 아니라, 문제 발견 → 아이디어 도출 → 구조화 → 실행 계획 수립 → 성과 도출이라는 체계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지역 청소년의 독서 흥미 저하라는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그다음에 ‘게임북 읽기’나 ‘Z세대 작가와의 만남’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상자 분석, 운영 일정, 예산 계획, 홍보 전략, 위험 요소 대응 계획까지 꼼꼼히 설계하는 것이 진짜 기획력이다. 문화사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공영역 안에서 활동하므로, 기획에는 반드시 사회적 의미와 공공성의 고려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기르기 위해선 우선 좋은 프로그램을 수집하고 벤치마킹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타 기관의 사례를 보며 왜 그 기획이 성공했는지 구조를 분석해보는 것이다. 또한 도서관 밖의 전시, 공연, 워크숍 등에 참여하며 다양한 문화기획의 방식과 연출 감각을 익히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결국 기획력은 많이 보고, 구조화해보고, 실행해보는 경험에서 자라난다. 실패한 기획조차도 훌륭한 자산이 된다. 실천하며 배우는 기획이 문화사서의 진짜 경쟁력이다.
3. 감수성은 공감력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읽는 능력
기획력은 도구이고, 감수성은 문화사서의 영혼이다. 감수성이 없는 기획은 공감을 얻기 어렵고, 감수성만 있는 콘텐츠는 흩어지고 만다. 문화사서에게 감수성이란 사람의 말 너머의 마음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삶의 결을 콘텐츠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감수성은 독서를 통해,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란다. 예를 들어,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재미있는 내용보다 아동 발달 특성과 사회적 요구를 함께 고려한 기획이 되어야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된다. 또한 ‘소외계층 대상 책읽기’ 프로그램도 단지 읽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와 연결되었다는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런 감수성은 책 속에서, 사람의 표정 속에서, 지역의 작은 변화에서 자란다. 문화사서가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선 자신만의 정서적 채널을 지속적으로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책을 읽을 때, 단순 줄거리보다는 등장인물의 선택에 공감하고, 전시를 볼 때 미학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읽는 자세. 또한 일상 속 다양한 세대와의 대화에서 이용자의 생활 감각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결국 프로그램에 녹아든다. 감수성은 꾸미는 게 아니라, 관찰하고 공감하며 쌓아올리는 것이다.
4. 나만의 기획 감각을 만드는 실천 전략
기획력과 감수성은 생각만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문화사서로서 성장하려면 일상 속에서 두 능력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첫째, 기획 노트 쓰기를 추천한다. 일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 타인의 반응, 성공적이었던 콘텐츠 사례 등을 적고, 그 안에 기획 요소(대상, 목적, 방법, 효과)를 분석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획 사고력이 쌓인다. 둘째, 정기적으로 콘텐츠 분석 훈련을 하자. 책, 전시, 공연, 유튜브, SNS 콘텐츠 등을 관찰하며 누가 대상이고,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해보면 자연스럽게 기획 감각이 생긴다. 셋째, 작은 프로젝트부터 직접 해보기다. 도서관 내부에서 간단한 큐레이션이나 북토크, 비정기 워크숍 등을 기획·운영해보며 기획의 A to Z를 경험하면 금세 성장할 수 있다. 넷째, 지역 단체와 협업하기. 지역서점, 문화센터,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타인의 감수성과 기획 방식을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서 간 네트워크 속에서 기획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험도 중요하다. 사서끼리 서로의 기획안을 검토해주고 토론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면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 기획력과 감수성은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확장하며 만들어가는 감각이다.
5. 문화사서의 길: 콘텐츠를 넘어 문화를 만드는 사람
문화사서는 책을 넘어서 사람의 삶을 연결하고, 도서관을 넘어서 지역의 문화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결국 문화사서의 목표는 ‘하나의 프로그램 운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 생태계를 도서관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목적 없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지역 사회가 원하는 변화와 도서관의 공공성을 연결해내야 한다. 문화사서의 콘텐츠는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시기에 생태독서회, 제로웨이스트 전시, 쓰레기책 워크숍을 연결한다면 그것은 단순 기획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 문화 실천이 된다. 사서 한 사람의 감수성과 기획력이 도서관이라는 공공장치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문화사서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첫 책을 읽는 계기, 누군가에게는 말 걸 수 있는 용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문화사서의 길은 콘텐츠를 넘어서 ‘문화’ 그 자체를 짓는 길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나의 감수성, 나의 기획력, 그리고 나의 꾸준한 실천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