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도서관의 사서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 벤치마킹
1. 글로벌 흐름 속에서 재조명되는 사서의 전문성
21세기 도서관은 전통적인 자료 제공 기능을 넘어, 정보 접근권 보장, 디지털 격차 해소, 커뮤니티 문화 조성, 창의적 학습 공간 제공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포괄하는 복합 서비스 기관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서의 역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단순한 자료관리자가 아닌 정보 전문가, 문화기획자, 교육자, 기술중개자로서의 역량이 요구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외 주요국들은 사서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다층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싱가포르 등은 국가 차원에서 사서 직무 분석을 통해 핵심 역량을 구체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인증제, 평생학습 과정, 대학원 연계 프로그램 등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특히, 지속적인 직무 재교육을 필수로 간주하며 사서 개인의 전문성뿐 아니라 도서관 조직 전체의 혁신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서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은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역량, 윤리적 판단력까지 포괄하는 통합 역량 중심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정보 큐레이션, 인공지능을 활용한 검색 지원, 다문화 서비스, 감정노동 대응 훈련, 어린이·노인 특화 서비스 기획 등과 같은 특화 과정을 통해 도서관 이용자의 다양성과 사회 변화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 자체의 우수성에 그치지 않고, 사서를 능동적 학습자이자 변화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참고할 가치가 크다.
2. 미국 ALA의 CE 프로그램과 민간 연계 교육 모델
미국은 도서관 분야에서 가장 체계적인 전문성 강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로, 특히 **미국도서관협회(ALA, American Library Association)**는 사서의 전문성을 다각도로 지원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ALA는 CE(Continuing Education) 시스템을 통해 현직 사서를 위한 200여 개 이상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교육과정을 제공하며, ‘ALA 인증 교육’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준을 통해 전국의 도서관에서 공통적으로 활용 가능한 교육 품질을 보장한다. 교육과정은 정보 접근과 윤리, 디지털 리터러시, 커뮤니티 관계 구축, EDI(형평성·다양성·포용성), 저작권법, 디지털 프레저베이션 등 세부 주제로 나뉘며, 연간 이수 기준을 충족하면 인증서를 부여받을 수 있다.
특히 민간 부문과의 협업이 활발하다는 점도 미국 모델의 특징이다. Google, OCLC, Coursera, edX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협업하여 IT 리터러시, 데이터 분석, AI 기반 도서 서비스, UX 설계, 디지털 보안 등 최신 기술 교육을 도서관 업무와 연계하여 제공한다. 예를 들어, ALA는 Google의 ‘Grow with Google’ 캠페인을 통해 사서들이 지역 사회의 디지털 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했으며, 이는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매우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개별 역량 향상을 넘어, 도서관의 전체 운영 전략과 서비스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구조적 효과를 갖는다. 한국도 이러한 구조적 연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민간 기술 플랫폼과 협력한 사서 재교육 프로그램 구축은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다.
3.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특화 프로그램 비교
유럽 국가들도 사서 전문성 강화에 있어 매우 높은 기준과 다양한 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CILIP(Chartered Institute of Library and Information Professionals)**은 사서의 전문직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 전문성 개발(CPD: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제도를 운영한다. CILIP은 4년 단위로 전문 자격을 갱신하도록 하고, 회원들이 이수한 교육, 워크숍, 현장 적용사례 등을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관리하게 한다. 또한 ‘정보 윤리’, ‘지식 조직과 검색 전략’, ‘정보정책과 리더십’과 같은 고차원 교육과정을 통해 사서를 도서관 경영의 전략 파트너로 육성하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 국가도서관관리청(NLB)**은 ‘Library Professional Development Roadmap’을 통해 디지털 도서관 전환에 부응하는 전문 사서를 양성 중이다. 이 로드맵은 사서를 ‘정보 큐레이터’, ‘디지털 설계자’, ‘미디어 교육가’라는 세 가지 축으로 재정의하고, 이에 맞춘 3단계 연속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특히, 현장 기반 프로젝트 수행이 필수화되어 교육 내용을 실제 업무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 도서관계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포인트다. 또 독일은 지역 주도형 도서관 교육 모델을 확산하고 있으며, ‘도서관 혁신 랩(Library Innovation Labs)’을 통해 사서들이 자율적으로 기획·실행하는 실험적 프로그램을 지원해 현장 중심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사서를 단순히 운영 인력이 아닌 창조적 기획자이자 정보·기술 전문가로 육성하고 있으며, 그 기반에는 정부와 교육기관, 민간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도서관계도 현재보다 더 전략적이고 유연한 접근을 통해 사서 직무 교육의 내용과 구조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4. 국내 도입을 위한 벤치마킹 방향과 제언
외국 도서관의 사서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을 한국에 효과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내용 복제보다 제도와 현장의 정합성을 고려한 전략적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첫째로, 한국도서관협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전국 단위의 사서 전문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표준화된 커리큘럼, 공신력 있는 인증제, 직무별·경력별 학습 로드맵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민간 IT 기업이나 대학교와의 협업을 통해 최신 기술교육을 실무와 연결하고, 실제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통해 교육 내용을 현장에 이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 도서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예산 및 운영 지원을 분산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 도서관별 ‘사서 학습 커뮤니티’나 ‘도서관 역량 혁신 랩’을 조직해 실무 중심의 실험과 학습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사서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한 자각을 높이기 위해 자기 주도적 학습 포트폴리오 제도를 도입하고, 정기적인 역량 진단 및 맞춤형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성장 경로를 가시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제해결,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등 ‘비가시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문학 기반 통합교육과,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데이터 리터러시, 정보기술 활용 교육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사서가 단순한 운영자가 아닌 ‘미래를 설계하는 지식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전문인력 육성 전략과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사서 개인의 성장을 넘어, 도서관의 미래 가치와 사회적 신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