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제도가 뒷받침하는 사서 교육 인프라
1. 사서 교육의 본질은 ‘지속 가능한 전문성’ 확보에 있다
도서관은 지식 정보사회의 기반 인프라이며, 그 중심에는 사서가 있다. 그러나 사서의 전문성이 단순히 자격증이나 학위로만 보장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급변하는 정보환경과 이용자 요구 속에서 사서의 역할은 자료 제공자에서 정보 큐레이터, 독서 교육자, 지역사회 문화기획자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사서에게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이 필수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은 바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 인프라다. 그러나 개별 사서가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독자적으로 교육을 찾아야 하는 현재의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사서 교육을 구조화하고 표준화하며, 지역 간 편차를 줄이고 교육 접근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서가 스스로를 갱신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 역량 강화가 아닌, 도서관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공공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2. 정책은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는 기반을 제공한다
사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먼저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이 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도서관진흥종합계획’이나 ‘도서관법’ 같은 법적 기반 속에 사서 교육의 중요성과 실행 구조가 명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일부 정책은 사서 재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해왔지만, 실행력 있는 예산 확보나 교육 대상의 세분화, 직급별 교육 커리큘럼 설계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제도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각급 도서관에서 활동하는 사서들의 직무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초급 사서부터 중간 관리자, 관장에 이르기까지 직무수행에 필요한 역량 모형을 정립하고, 이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이 구성되어야 한다. 제도는 이 교육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경력 누적과 함께 자연스럽게 전문성을 심화시킬 수 있도록 경력관리 체계와 연계되어야 한다. 나아가 중앙정부, 지자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양성기관 간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적 조정기구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3. 지역 간 교육 불균형 해소는 정책 개입으로 가능하다
사서 교육 인프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지역 간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다. 대도시나 거점도시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연수나 세미나, 실습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농촌이나 소도시, 도서벽지의 사서들은 물리적 거리, 인력 부족, 시간 제약 등으로 교육에서 소외되기 쉽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지역 도서관 서비스의 질 차이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정보 접근 형평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해소하려면 중앙 차원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예컨대 사서 대상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고도화하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지역 거점 도서관에 일정 규모의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 소지역 단위의 정기 연수회를 개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이수를 승진이나 보직 이동에 반영함으로써 사서 개인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보상체계도 필요하다. 교육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서가 자발적으로 성장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촉매가 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정교한 제도 설계와 정책적 의지다.
4. 교육 내용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현장 중심 설계
사서 교육이 효과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용의 실효성이 핵심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과 교육 내용이 괴리된다면, 그것은 단지 ‘시간 떼우기용 연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 콘텐츠는 사서들이 실제 겪는 문제, 예컨대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 독서문화 진흥, 민원 응대, 다문화 서비스, 디지털 자료 관리 등 구체적인 업무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론보다는 실습과 사례 기반 학습이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신기술이 도서관 운영에 도입되면서 관련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시급해졌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교육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도서관 일반론이나 고전적 독서지도에 집중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육 내용을 시대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현직 사서들의 수요 조사를 반영해 유연하게 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강사 선정 시 이론 중심의 학자보다는 실제 도서관 현장을 잘 이해하는 실무 전문가를 적극 발굴하고, 사서 간 경험 공유를 장려하는 워크숍형 교육도 확대되어야 한다. 교육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길러주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5. 교육 인프라는 사서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적 투자다
결국 사서 교육 인프라 구축은 단순한 조직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사회 전체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대한 과제다. 도서관이 정보를 민주화하고, 지역사회의 문화 중심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서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꾸준한 정책적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서가 자신의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도서관 이용자와 지역사회 전체에 돌아간다.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국가가 사서 교육에 일정 예산을 배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교육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며, 각급 도서관이 조직문화 차원에서 학습을 장려할 때 비로소 사서 개개인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설계하고 도전할 수 있다. 사서가 성장하면 도서관도 성장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명확한 정책 방향과 안정적인 제도 기반에서 출발한다. ‘배움이 있는 사서’가 ‘변화를 만드는 도서관’을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교육 인프라 구축을 장기적 사회 투자로 인식하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