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 사서의 윤리와 소명의식
1. 공공도서관 사서의 정체성과 윤리의식의 출발점
공공도서관은 지역 주민 누구나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문화 인프라이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정보 접근권과 평생학습의 권리를 실현하는 핵심 공간이다. 이 공간의 중심에서 작동하는 사서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정리하고 대출하는 수준을 넘어서, 정보 중개자이자 시민사회의 윤리적 안내자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공공도서관 사서는 이용자의 배경, 계층, 성별, 나이, 인종, 종교, 정치적 성향 등 모든 차이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정보의 자유를 수호하고, 사적인 신념이 공공 서비스에 개입되지 않도록 윤리적 자율성과 공공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서에게는 단순한 직무 수행 능력뿐 아니라, 공공성과 중립성, 다양성 존중, 정보 보호, 표현의 자유 수호 등 사회적 윤리를 내면화하는 태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사서는 공공기관의 일원인 동시에 지역 공동체의 문화를 기록하고 연결하는 실천가이며, 그 정체성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에 기반한 직업윤리에서 출발한다.
2. 정보의 자유와 중립성 수호: 사서 윤리의 핵심
정보는 시민의 권리를 실현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공공도서관 사서는 다양한 정보를 차별 없이 제공하고, 검열이나 편향에 맞서 정보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는 단지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정체성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나 정치 관점을 배제하거나, 성소수자·이주민 관련 자료를 선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서관의 장서를 제한하는 것은 정보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사서는 이러한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도서관을 보호해야 하며, 이용자가 스스로 정보를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사서는 이용자의 열람 기록과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정보 제공과 상담 과정에서 개인의 사적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고도의 윤리적 책임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단지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정의로운 태도와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적 윤리다. 사서는 이 과정을 통해 도서관을 단순한 지식 창고가 아닌, 민주적 공론장이자 인권의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주체로 존재한다.
3. 소명의식과 일상의 실천: 사서의 내면적 동기와 공공적 역할
사서의 윤리와 직업적 태도는 결국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내면적 물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공공도서관 사서는 단지 급여를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지식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배움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지키는 사람이다. 예산이 부족하고, 행정업무가 과중하며, 사회적 인식이 낮더라도 사서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명감’에서 비롯된다. 아동에게 책을 읽어주는 작은 행사 하나에도, 시니어에게 스마트폰 이용법을 안내하는 일상적인 상담 하나에도 사서의 사명감은 깃들어 있다. 또한 도서관이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공론장이 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배제되지 않는 정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기획자로서의 역할은 사서의 존재 이유를 더욱 분명히 해준다. 도서관은 항상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은 실천은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사서의 소명의식은 이러한 공간의 윤리를 지탱하는 내면적 기반이며, 이는 사서 자신에게도 직업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원천이 된다.
4. 사서 윤리의 제도화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과제
공공도서관 사서의 윤리와 소명의식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제도적 뒷받침과 조직 내 윤리문화 조성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며, 사서가 윤리적 판단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서윤리강령이 선언적 문서에 그치지 않고, 실천 가능한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교육과 사례 기반 워크숍이 운영되어야 하며, 특히 도서 선정, 정보 제공, 민원 대응, 정치적 중립성 유지 등 구체적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공유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사서의 윤리적 판단이 외부 압력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기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도서관 윤리위원회 또는 시민자문기구의 설치도 고려될 수 있다. 나아가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도서관이 지역 민주주의와 정보 인권의 수호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사서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재정립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결국 사서의 윤리는 단지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보문화 수준과 민주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지표이며, 사서의 소명의식은 단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기반이다. 이 윤리와 소명의식이 정착될 때, 도서관은 책보다 더 값진 신뢰를 보유한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